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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거장들]<5>美하이퍼 픽션 개척자 로버트 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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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의 거장들]<5>美하이퍼 픽션 개척자 로버트 쿠버

입력 2005-05-08 18:57수정 2009-10-0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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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월간 ‘문학사상’의 ‘세계 지성과의 대담’을 위해 로버트 쿠버 씨를 처음 만나 인터뷰한 것은 1981년 미국 뉴욕 주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였다. 두 번째 만남은 1985년, 소설 ‘공개 화형’과 관련해 그가 서울에 왔을 때였다. 이후 우리는 e메일로 글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박태원의 원작 소설과 그것을 패러디한 최인훈의 동명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하루’는 주인공의 하루 행적을 통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고뇌를 그리고 있는 특이한 작품들이다. 미국 소설가 쿠버 씨의 하루 역시 전자매체가 활자매체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는 이 시대에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쿠버 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컴퓨터 앞에 앉아 ‘하이퍼 픽션’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자소설을 쓴다. 대형 모니터에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배경음악을 깔아놓고, 옆에는 여러 가지 아이콘들을 만들어 놓는다. 독자들이 아이콘을 클릭하면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이나 정반대의 결말을 즐길 수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하나의 결말만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하이퍼 픽션에서는 독자들도 창작에 동참하게 되지요.”

1985년 서울을 찾은 로버트 쿠버 씨(왼쪽)와 만난 김성곤 교수. 올해로 쿠버 씨는 73세가 됐지만, 여전히 새롭고 모험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사랑한다. 사진 제공 김성곤 교수

하이퍼 픽션은 종이책 소설과는 달리, 모니터에 수많은 창을 동시에 열어놓고 건너뛰며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하이퍼 픽션은 스티븐 킹의 e-북처럼 온라인상에서 독자들의 구매가 이루어져 출판사가 필요 없다. 멀티미디어 문학 시대를 여는 새로운 개념의 소설인 것이다.

쿠버 씨는 집필이 끝나면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소재한 명문 브라운대에 나가 창작을 가르친다. 쿠버 씨가 주관하는 ‘케이브(CAVE·최첨단 컴퓨터 영상화 센터)’는 전자시대의 문학을 산출하는 미래 소설의 인큐베이터다. 벽이 대형 스크린으로 돼 있는 가상 현실 랩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전자음악과 3D 가상현실이 뒤섞이면서 문학은 더 이상 종이 위의 고정된 활자가 아니라, 사운드와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3차원 멀티미디어 종합예술이 된다.

“나는 컴퓨터게임과 문학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보세요. 컴퓨터게임과 아주 흡사합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쿠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소설의 대가’이자 ‘게임과 문학을 접목시키는 전자소설의 대부’라고 불리는 쿠버 씨가 73세라는 사실은, 나이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최첨단 작가여서인지 쿠버 씨는 얼굴마저 동안(童顔)이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도 저는 말보다 스크린 이미지로 청중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벌집문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구멍을 통해 들어가지만 우리는 결국 인터넷이라는 꿀통에서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하며 살고 있는 셈이지요.”

쿠버 씨의 아내 필라 씨는 46년 전 그가 스페인 체류 시 카탈루냐에서 만나 결혼한 여자다.

“카탈루냐는 프랑스 쪽에 가깝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차별받는 지역입니다. 그건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작가란 정신적 망명객과도 같아서 카탈루냐 사람들처럼 늘 소외된 삶을 살게 되니까요.”

쿠버 씨는 아내 필라 씨에게 이번에 극동여행을 특별한 선물로 제공한다. 그의 대표작 ‘공개 화형’의 배경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서울에 올 계획이다.

“현대판 마녀재판으로 불리는 매카시즘을 패러디하는 소설 ‘공개 화형’을 쓰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1985년 한국을 방문했지요. 이제는 인터넷 강국이 된 한국을 20년 만에 다시 찾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밤이 오면 쿠버 씨는 집에서 영화를 본다. 그의 소설 ‘영화 보는 밤’은 바로 문학과 영화를 접목시킨 소설이다. 아예 영화처럼 1부와 2부 사이에 막간 휴식도 있다.

쿠버 씨의 하루는 동화들에 대한 패러디 소설 집필로 끝난다. 최신작 ‘계모’에서는 계모가 등장하는 여러 동화들의 재해석을 통해 여성 문제와 성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하나의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냄으로써, 동화들을 시대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지요.”

그는 진부한 리얼리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향해 이렇게 질타한 적이 있다. “차라리 다시 한번 고래 뒤를 추적하거나, 헨리 밀러처럼 유랑의 길을 떠나거나, 아니면 신화나 동화의 세계를 탐색해 보라.”

쿠버 씨는 지금 사이버공간 속에서 문학의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은 안개를 뚫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흰 고래 ‘모비 딕’처럼 이제 우리 앞에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한국 현대영미소설학회 회장

○ 로버트 쿠퍼는…

△1932년 미국 아이오와 주 출생

△1953년 인디애나대 졸업

△1965년 시카고대 대학원 졸업

△1966년 ‘브루니스트들의 기원’으로 최우수 처녀작 상인 윌리엄 포크너 상 수상

△1977년 ‘공개 화형’이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후보작으로 선정됨

△현재 브라운대 영문과 교수. 주로 영국과 스페인에서 집필

△소설 ‘우주의 야구 협회’ ‘점보 악곡과 고음부’ ‘제럴드의 파티’ ‘영화 보는 밤’ ‘베니스의 피노키오’ ‘존의 아내’ ‘브라이어 로즈’ ‘계모’ 등을 출간.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에 대해 오비(Obie)상 3회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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