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만 줄줄줄…지자체, 멀쩡한 청사두고 새집짓기 붐

  • 입력 2005년 5월 6일 03시 13분


코멘트
정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이 공간이 좁다는 등의 이유로 경쟁적으로 새 청사(廳舍)를 짓는 바람에 상당수 옛 청사가 텅 빈 채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기존 건물을 어떻게 활용하거나 처분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 없이 무턱대고 새 건물을 짓는 바람에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비운 채 버틴다=인천지방법원은 2002년 8월 인천 남구 주안6동의 청사를 비우고 학익동에 새 청사를 마련해 이사했다. 2600여 평 규모의 옛 청사는 서류창고로 사용될 뿐 사실상 방치돼 있다.

2002년 12월 인천 남동구 구월동으로 이전한 인천지방경찰청의 중구 항동 옛 청사(1900여 평)도 3년째 비어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해 4월 남구 신정3동에서 중구 유곡동으로 이전한 뒤 옛 청사를 방치하고 있다. 울산지방경찰청도 같은 해 11월 남구 삼산동에서 중구 성안동으로 옮겼으나 옛 청사를 전경용 임시 숙소로 사용할 뿐 활용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처럼 건물이 방치되는 것은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만은 아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2002년 당시 옛 인천지방법원 건물을 사려고 했으나 법원 측이 ‘지자체에 건물을 매각하면 대금이 국고로 귀속되므로 팔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전했다.

국유재산법 규정에 ‘정부 재산을 매각할 경우 그 대금은 (해당 행정기관의 재산이 아니라) 국고에 다시 귀속된다’고 돼 있어 빈 건물을 파는 대신 다른 부동산과 맞교환하려고 임자를 무작정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확인 결과 일부 공공기관은 옛 건물을 매물로 내놓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분할 길 막막=전북 남원시 동충동에 있는 옛 남원시 청사는 벌써 10년째 방치된 채 도심 속의 흉물이 되어 가고 있다.

1995년 도통동에 새 청사를 지어 옮긴 뒤 2000여 평의 터에 건립된 옛 청사를 팔려고 내놓았으나 지역 내에서 마땅한 매입자를 찾지 못한 것.

충북 제천시는 1980년 시로 승격되면서 청전동에 3062평 규모의 청사를 지었으나 1995년 시군 통합 이후 천남동에 다시 새 청사를 마련해 1997년 6월 이전했다.

시는 8년째 비어 있는 청전동 건물을 100억여 원에 매각하기 위해 공고를 내고 용도변경은 물론 매각 대금 분할 납부 등의 조건을 내걸었지만 처분하는 데 실패했다. 경비용역업체에 맡겨 빈 건물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만 날리고 있는 것.

전북도는 6월에 청사를 이전할 예정이지만 현 청사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복안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 빈 공공건물이 널려 있는데도 상당수 공공기관은 여전히 새 청사 짓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지방행정과 재정을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들이 한술 더 떠 건물 신축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인하대 행정학과 김영민(金英敏) 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공공기관의 청사를 새로 짓는 데 필요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남원=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제천=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