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콘도’ 캠핑카 타고 떠나는 여행

  • 입력 2005년 5월 5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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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 좋은 곳은 어디나 나의 공간으로 만들수 있는 캠핑카. 장소와 예약에 관계없이 훌쩍 떠나보자.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 당신의 것이 된다. 강병기 기자
경치 좋은 곳은 어디나 나의 공간으로 만들수 있는 캠핑카. 장소와 예약에 관계없이 훌쩍 떠나보자.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이 당신의 것이 된다. 강병기 기자
《여행!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여행!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장소와 날짜를 정하고,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혼자면 모를까 서로 시간과 장소를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합의를 봤건만 이런? “방이 없대… ㅜㅜ.”

웬만한 관광지라면 쉽게 방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

“방도 없는데 여행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왜 없어?”이때 캠핑카가 떠오른다. 방 없이 예약 없이 떠날 수 있다.

캠핑카 렌털 업체 ‘좋은 주말 GOOD WEEKEND’(02-2105-1900)

의 도움을 받아 캠핑카 여행을 다녀왔다.》

○ 예약 없이 방 없이

날짜를 맞추면 숙소가 없고, 방을 예약하자니 시간이 안 맞고…. 캠핑카는 이런 문제를 일순간에 해결해 줬다. 장소도 ‘A Piece of cake’(누워서 떡먹기)!

대충 떠나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면 곧장 그 자리로 가면 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경기 남양주시의 다산 정약용 묘역 부근 강가. 강 옆으로 푸른 잔디가 그림처럼 펼쳐진 곳이다.

차량은 독일 벤츠사의 6인용 모터 캐러밴. 캠핑카에는 운전석이 붙어있는 모터 캐러밴과 차와 연결을 해서 사용하는 캐러밴(트레일러 캐러밴이라고 부른다) 등 두 종류가 있다.

대여한 차 안에는 가스레인지, 냉장고, 전자레인지, 싱크대, 화장실 및 샤워실, 4인용 테이블(2인 침대로 변형 가능), 2, 3인용 침실, TV, 각종 그릇과 주방용품이 갖춰져 있으며 약 200L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차의 크기는 일반 밴보다 크지만 2종 보통 운전면허로도 운전이 가능하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26세 이상만 운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곳도 있다. 대여비는 모터 캐러밴은 24시간에 30만 원. 5월 한 달간은 18만 원에 빌려준다. 수입차여서 다른 업체(24시간 20만 원 선)에 비해서는 비싼 편. 20만 원대의 캠핑카는 대부분 국내에서 제작한 차량을 사용한다고 한다.

○ 아름다운 밤

밤 8시, 멤버(6명)가 다 모인 뒤 서울 서초구 양재동을 출발해 경기 남양주시로 향했다. 차가 커서 운전석을 제외한 캠핑카 안쪽은 흔들림 때문에 다소 멀미가 나는 것이 흠. 높이가 3.3m여서 터널이나 톨게이트 앞에서 주의해야 하고, 크기와 무게로 브레이크를 밟을 때 제동거리를 충분히 둬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운전의 어려움은 거의 없다.

낯익은 한강변이지만 캠핑카 안의 큰 창문을 통해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줬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실내에 클래식이 울려 퍼지자 ‘달리는 응접실’을 방불케 했다. 실내 설비에 나무를 많이 사용한 탓으로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점이 흡연자들에겐 아쉬울 듯.

이윽고 도착한 캠핑 장소. 짙은 어둠 위로 야광처럼 파릇하게 덮인 잔디. 철썩이는 물소리. 앤젤리나 졸리가 슬쩍 걸친 야릇한 잠옷처럼 밤안개에 싸인 강 건너편의 산.

강 옆에 조용히 세운 우리들의 작은 보금자리. 잔디 위에 간이 테이블을 펴고 준비한 재료로 식사를 준비하는 일행들. 차 외부에 달린 차양막을 펴고 카 오디오로 다니엘 바렌보임이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2번(생뚱맞지만 명반 중의 명반이다)을 틀었다.

운전석과 실내에 스피커가 여럿 달린 덕분에 마치 공연장에 온 느낌을 줬다. 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그대로 우리 것이 됐다.

그릇과 가스레인지(3개)가 충분해 조리에는 문제가 없다. 출발할 때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용량보다 적은 100L만 채워 세면과 용변, 샤워가 다소 불편했다. 물론 외부 전원과 식수를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선과 장치가 있어, 외진 곳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은 여성들이 사용하기에 다소 불편했다. 실내에 너무 밀착돼 있어 소리가 들리는 단점이 있다(여성들은 인근의 다른 화장실을 사용했다).

전자레인지 전등 오디오 등으로 밤새 전원을 사용해도 자체 발전기가 있어 충분하다.

잠이 안 온다. 모두들(어두워지면 눈이 감기는 단순한 해병대 출신 한 남성만 빼고)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과 인생과 사랑에 취해 갔다.

○ 스위스를 왜 가?

해님이 실눈을 뜬다. 짙은 물안개로 반쯤 잠긴 산은 강 위에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놓았다. 테이블을 강가로 옮기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얼굴은 좀 빠지지만 CF가 따로 있을까.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향기’…. 이런 커피 광고 카피가 물결 위에 둥둥 떠다닌다.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운전석 위의 침대 공간은 길이나 너비는 충분하지만 높이가 낮아 에로틱한 행위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다 머리가 ‘쾅’. 테이블 침대는 높이는 충분하지만 길이가 다소 짧아 키 큰 사람은 조금 불편하다. 즉 키가 큰 커플이나 부부는 따로 자야 한다는 말이다.

대형차를 운전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멀리 가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혹시 접촉 사고나 생기지 않을까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보험에 가입돼 있어 큰 문제는 없지만 신경은 계속 쓰인다.

캠핑카 인구는 점차 느는 추세. 이 회사만 해도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0만 명이 이용했으며 최근에는 재작년에 비해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비용이 좀 부담스럽지만,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갈 때 숙박비, 식사비, 기름값(경유차) 등을 비교하면 ‘캠핑카 여행’도 고려해볼 만하다.

출발 전 보험과 차량 시설은 꼭 점검해야 한다. 떠나기 전 파손 상태나 물품을 확인하지 않으면 반납할 때 분쟁의 요소가 될 수 있다.

호텔이나 콘도만큼 편하지는 않지만 자연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여행. 캠핑카 여행이 그랬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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