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사법에 ‘미래지향’이 보이지 않는다

  • 입력 2005년 5월 4일 21시 05분


코멘트
과거사법으로 줄여 불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됨에 따라 우리 사회에 ‘과거사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친일법(일제강점기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개정돼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국가정보원, 군(軍), 경찰은 따로 ‘진실위원회’를 만들었다. 연구 영역을 벗어나 나라 안의 과거를 캐는 일에 국력과 행정력이 얼마나 소모될지, 과거사가 오늘의 정치적 잣대에 의해 왜곡되지나 않을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과거사법의 조사 대상은 항일독립운동과 6·25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권위주의 정권 시절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사망 실종 사건 등이다. 대상 기간과 범위는 100년 전에서부터 얼마 전까지의 일로 매우 광범위하다. 객관적 자료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조사의 공정성을 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야는 벌써부터 조사 대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각 당은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한 사건을 먼저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만 보아도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념갈등이 격화되고 관련자들이 ‘여론 재판’에 몰리는 등 사회적 불화와 대립이 증폭될 소지가 농후하다. 정치권에선 상대 당을 공격하거나 라이벌의 정치 생명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정략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조사기간 중에 내년 지방선거, 2007년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있어 ‘역사의 정치쟁점화’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과거사법은 친일법 및 국가기관의 진실 규명 작업과 상당 부분 중첩돼 있다.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조사 대상자에 대한 동행명령권을 인정하고, 이미 법원의 확정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재심을 허용한 것은 위헌 요소를 안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과거사 정리가 미래의 국민통합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우지만 과연 미래지향적이라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진실 규명은 멀고 정략적 정치적 악용은 가까이 있어 보인다. 앞으로 수년간 온 나라가 과거에 매달려 국력을 얼마나 더 낭비해야 할 것인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