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전, 건물-땅 팔아도 3조 3000억 모자라

  • 입력 2005년 5월 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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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기관 이전 정책이 졸속으로 추진돼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추병직(秋秉直) 건설교통부 장관은 2일 “공공기관 180여 개를 이전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2조 원 정도”라고 밝혔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 건설교통위원회에 출석해 이같이 말하고 “이전 대상 공공기관 180여 개의 자산(건물과 토지)이 8조7000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전에는 3조3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효율성과 적절성 자체가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이전비용마저 늘어날 것으로 보이자 정부 판단의 신뢰성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이날 정부는 수도권과 대전 충남 제주를 제외한 10개 광역 시도에 한국전력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등 이전 파급 효과가 큰 대규모 공공기관을 시도별로 1개씩 일괄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전비용=정부는 올 3월 초 전국 11개 시도에 공공기관을 이전해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비용으로 모두 4조∼8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추정했다.

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건설교통부는 당시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 방안’이라는 제목의 공식 문건을 통해 “이전비용 상당부분은 기존 청사와 부지 매각대금으로 충당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달 만에 이전비용은 12조 원으로 증가했다. 또 이전대상인 180여 개 공공기관의 청사 및 부지 매각대금은 8조70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3조3000억 원 중 상당액은 특별회계를 통한 재정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게 됐다.

건교부는 “이전 비용 12조 원은 청사의 규모를 크게 확대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향후 구체적인 비용은 이전 지역과 입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전망”이라고 해명했다.

▽이전지역 결정 시기=추 장관은 “180여 개 공공기관의 시도별 분산 배치 결과를 5월 30일 발표한 뒤 이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의원 다수는 △국회 논의 부족 △공공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반발에 대한 대응방안 수립 △이전비용 대책 마련이 선결돼야 한다는 이유로 결정 시기를 미룰 것을 촉구했다.

또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을 제정키로 해놓고 법도 만들어지기 전에 공공기관 배치를 하는 것은 선후(先後)가 뒤바뀐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 직원 의견수렴=추 장관은 이날 공공기관의 의견은 ‘참고사항’이라고 밝혔다. 또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의원이 “공공기관 직원들이 반대해도 강제 이전할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열린우리당 조경태(趙慶泰) 의원이 “대한주택공사, 한국토지공사 등 일부 대형 공공기관은 본사 건물을 매각하지 않고 지방이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추 장관은 “반드시 매각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본보가 10개 대형 공기업 본사 노조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3월 23일자 A1·5면 참조)에 따르면 8개 노조는 이전에 반대했고, 2개 노조는 이전에 유보적인 태도이면서도 정부의 이전방식 및 절차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정부가 의견수렴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이전을 강행할 경우 다수 공기업 노조의 강경반발이 예상된다.

▽국책연구기관 이전=정부는 지난달 이전 대상 부처와 연관이 있는 24개 인문 사회 경제 분야 국책연구기관을 함께 행정도시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주승용(朱昇鎔) 의원 등은 “국책연구기관 45개가 정작 지방엔 안 가고 수도권에 남거나 행정도시로만 옮기는 것은 지방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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