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선물-옵션시장, 위험회피 본래 기능은 사라지고…

  • 입력 2005년 5월 3일 03시 05분


코멘트
○국가 공인 카지노?

지난달 14일 옵션 만기일.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가지수옵션시장에서 대박이 터졌다. 전날까지 고작 6000원이던 행사가격 125.00짜리 풋옵션 가격이 주가가 급락하면서 무려 17만1000원까지 치솟은 것.

풋옵션을 매수한다는 것은 주가가 떨어지는 쪽에 돈을 걸었다는 의미다. 주가가 떨어질수록 풋옵션 가격은 오른다. 이날 주가 폭락으로 풋옵션 시장에서는 수익률 2750%의 잭폿이 터졌다.

개인투자자들은 주가지수선물과 옵션의 이런 대박 신화에 열광한다.

선물시장의 변동 폭은 증시의 7배가량 된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수익률의 역동성은 지루한 증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옵션시장은 더 심하다. 2001년 9·11테러 직후 풋옵션시장에서는 하루 만에 가격이 507배나 오르는 잭폿이 터졌다. 물론 대박의 반대편에서는 돈을 잘못 걸어 수십 억 원을 날린 투자자가 부지기수로 나왔다.

한 누리꾼은 ‘선물과 옵션시장은 국가 공인 카지노’라는 제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주가지수선물에 손을 대고 나니 주식 투자는 시시해서 할 수가 없었다. 단숨에 원금이 갑절로 불어나는 쾌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계좌가 깡통이 돼도 ‘한 번만 터지면 원금을 만회할 수 있다’는 유혹에 매매를 계속하게 된다.”

○사라진 헤지 기능

주가지수선물과 옵션의 본래 기능은 헤지(위험 회피)이다. 헤지란 주식 투자의 위험을 줄이는 기능을 말한다. 선물과 옵션은 이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름도 증시에서 파생됐다는 뜻에서 ‘파생상품 시장’으로 불린다.

헤지 방식은 이렇다. 100원어치의 주식을 샀다면 10원 정도는 선물에서 매도 포지션을 취하거나 풋옵션을 산다. 선물 매도와 풋옵션 매수는 모두 주가가 떨어질 때 돈을 버는 파생상품이다.

이렇게 하면 주가가 폭락해도 손실의 10% 정도는 선물과 옵션에서 얻는 수익을 통해 줄일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이런 식으로 헤지를 한다. 또 헤지는 증시를 활성화하는 역할도 한다. 어느 정도 위험을 줄여 주는 헤지 기능이 있어야 주식을 자신 있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헤지 기능이 대부분 외국인의 전유물이라는 점이다. 개인투자자 가운데 헤지를 위해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는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다소 줄긴 했지만 주가지수선물과 옵션시장에서 개인의 비중은 여전히 45%를 넘는다. 개인 비중이 5% 남짓인 선진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죽어가는 기타 파생시장

잘 돌아가고 있는 주가지수선물 및 옵션시장과 달리 정작 개인의 위험 회피를 위해 만들어 놓은 개별주식옵션과 코스닥50선물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다.

개별주식옵션은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등 주요 7개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만든 옵션시장. 개인투자자에게도 옵션을 통한 헤지의 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2002년 만들어졌지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올해 개별주식옵션에서 이뤄진 계약은 단 2계약이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90%를 넘는 코스닥시장을 기반으로 한 코스닥50선물시장도 마찬가지다. 거래소를 기반으로 한 주가지수선물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10조 원을 넘는 반면 코스닥50선물의 거래대금은 30억 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이처럼 다른 파생상품시장이 실패하는 것은 개인투자자들이 근본적으로 헤지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투기판이라면 주가지수선물과 옵션처럼 잘 돌아가는 ‘공식 투기장’을 놔두고 굳이 ‘판돈’이 적은 곳에 기웃거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파생상품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신아투자자문 최정현 사장은 “개인투자자들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파생상품시장에서 투기가 줄어들기는 어렵다”며 “개인투자자는 투자를 삼가라고 권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