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5월 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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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렇다면 다시 한번 용저에게 사람을 보내 행군을 재촉하시오. 아부(亞父)의 말을 따른다 해도 너무 오래 여기 잡혀 있을 수는 없지 않소?”

패왕이 이번에도 용케 치미는 화를 억누르며 범증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구강으로 내려간 용저와 항성에게 사람을 보낸 지 며칠 지나기도 전에 딴 곳에서 바라던 소식이 날아들었다. 남쪽에서 망산과 탕산 사이로 드는 길목을 느슨하게 막고 있던 환초가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오늘 새벽 구강군(九江軍)의 유성마 한 필이 에움을 뚫고 망산과 탕산 사이로 들었습니다. 이후의 산 속이 술렁거리는 게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합니다.”

마침 패왕 곁에 있다가 그 말을 들은 범증이 반가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는 바로 대왕께서 기다리던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용저와 항백이 구강을 휩쓸자 경포에게 급보가 들어간 것입니다. 어서 환초에게 명을 내리시어 모르는 척 길을 틔워주게 하십시오. 그런 다음 다시 용저와 항성에게 사람을 보내 허둥지둥 돌아오는 경포를 불시에 들이치게 하시면 어렵지 않게 그 목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패왕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범증이 이르는 대로 했다.

한편 망산과 탕산 사이에 숨어 패왕의 군사를 유격(遊擊)할 틈만 노리던 경포는 초나라 군사가 구강을 휩쓸고 있다는 소식에 몹시 놀랐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그 놀라움을 감추고 달려온 전령에게 물었다.

“구강으로 쳐들어온 초나라 장수는 누구라더냐?”

“북쪽과 동쪽 두 갈래인데 북쪽에서 내려온 장수는 스스로 용저라 밝혔고, 동쪽에서 온 장수는 항성(項聲)이라 하였습니다.”

“항성이라면 항백과 함께 팽성을 지키고 있던 자가 아니냐? 팽성을 잃었다 찾은 게 언제인데 또 항백이 팽성을 비우고 구강까지 항성을 내려보냈단 말이냐?”

경포가 묻는다기보다는 탄식에 가까운 말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때까지도 경포의 군막에 머무르고 있던 수하가 찾아와 물었다.

“대왕께서는 무슨 일로 이리 황망해 하십니까?”

“항우가 용저와 항백을 보내 우리 구강 땅을 쑥밭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하오. 이대로 두면 도성인 구강마저 적의 손에 떨어지고 말겠소. 어서 돌아가 도성을 지키고 과인의 기업(基業)부터 보존해야 되겠소.”

경포가 은연중에 원망 섞인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수하가 차분하게 받았다.

“대왕께서 진정으로 기업을 보존하시려면 그리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이는 범증 늙은이가 대왕을 사로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드는 꼴입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계책에 스스로 취해 느슨해진 패왕의 본진을 들이쳐서 패왕으로 하여금 용저와 항성을 불러내게 해야 구강 땅이 보존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도 어려우면 지금 저와 함께 형양으로 가서 우리 대왕과 군사를 합치는 것도 대왕을 위한 한 가지 방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경포는 이미 구강에 있는 처자와 재물 걱정으로 마음이 어지러워져 있었다. 수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제 뜻만 우겼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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