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신정아씨가 전하는 큐레이터로 산다는 것

  • 입력 2005년 5월 2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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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미술관 10주년 개관 기념전에 나온 작가 이기봉 씨의 작품 앞에 선 신정아 학예실장. 2002년부터 성곡미술관에서 크고 작은 전시들을 기획해 온 신 실장은 “쉽고 흥미 있으면서도 한국현대미술의 맥을 짚어보자는 취지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한다.  허문명기자
성곡미술관 10주년 개관 기념전에 나온 작가 이기봉 씨의 작품 앞에 선 신정아 학예실장. 2002년부터 성곡미술관에서 크고 작은 전시들을 기획해 온 신 실장은 “쉽고 흥미 있으면서도 한국현대미술의 맥을 짚어보자는 취지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한다. 허문명기자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은 도심 속의 몇 안 되는 미술관이기도 하지만, 100여 종의 나무로 조성된 숲과 산책로가 있는 1000여 평의 공원이기도 하다. 쌍용그룹 창립자 고 김성곤 회장 자택에 1995년 개관한 이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성곡미술관은 그동안 그룹전 65회(국내전 50회, 국제전 15회), 개인전 77회 등 총 142회의 전시회를 열어 한국화단에 활력을 불어 넣어왔다. 또 본관 별관의 전시장과 함께 조각공원을 만들어 전시장 안팎을 잇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해 온 점도 돋보인다.》

이 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차가움과 따뜻함’(Cool & Warm)전(6월 5일까지·02-737-7650)은 30대부터 60대까지를 아우르는 대표적 작가 19명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전시다. 이기봉 김호득 홍승혜의 회화작품을 비롯해 쓰레기들로 만든 안규철의 움직이는 로봇, 황토색 개 일곱 마리가 관객들에게 머리를 들이밀 듯 달려드는 조덕현의 발굴프로젝트, 윤석남의 살찐 소파, TV 뉴스를 짜깁기해 현실의 허구성을 꼬집는 김범의 영상작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주제로 만든 김수자의 보이지 않는 거울 등에는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면서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기획자의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신정아 학예실장은 “현대미술이라고 난해한 것이 아니다”며 “삶과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는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이 담긴 전시를 통해 성곡미술관이 추구해 온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공부하고 이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14일 예일대에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는 그녀는 1997년 금호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생활을 시작해 2002년 성곡미술관으로 옮겨 일해오고 있다.

신 실장은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밖에서 보면 화려하게 보이지만 전시기획에서부터 예산 조달, 작품 운반, 인쇄물 제작, 전시장에 못 박는 일까지 해야 하는 ‘노가다’”라면서도 “꼭꼭 숨어있는 작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많은 대중과 만나게 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관람객들이 안 올 때 느끼는 허전함과 막막함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보통 전시가 한 달 정도 가는데 관객이 적을 때는 매일매일이 지옥 같아요. 영화처럼 시각적 자극이 강하지 않은 미술의 경우 너무 쉬워도 안 되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되잖아요. 대중성과 전문성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기획이 가장 어렵습니다.”

신 실장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술관은 화단의 뿌리이자 토대입니다. 상업적 목적에서 벗어나 대중과 작가를 잇는 미술관들이 활성화될 때, 한 나라의 시각문화가 업그레이드됩니다. 우리나라 미술관들은 재정적으로 너무 취약합니다.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어요.”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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