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강홍빈]브랜드 아파트

  • 입력 2005년 5월 1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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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다, 오른다, 또 오른다.” 히말라야 원정대의 각오도,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탄식도 아니다. 브랜드 아파트만 사면 재(財)테크가 보장된다는 광고 카피다. 브랜드가 떠야 아파트가 뜬다는 건 요즘 건설업계의 정설이다. 위치와 설계가 비슷한 32평형 아파트 값이 브랜드에 따라 9000만 원 차이가 나더라는 보도도 있었다. 분양가 자율화 시대, 차별화가 키워드인 참살이(웰빙) 시대에, 아파트 재테크 전통과 명품선호 열풍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새 풍속도다.

▷남이야 명품으로 휘감든, 그 속에서 살든 상관할 바 아니다. 그러나 삶의 보금자리여야 할 집까지 명품 바람에 휩쓸리는 풍조는 안타깝다. 그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높은 아파트 가격이 더 치솟고, 문화적으로 궁핍한 도시가 더 일그러지는 게 슬프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와 대중매체의 집요한 마케팅 공세로 브랜드 아파트는 고품격 주거문화의 표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좋은 집과 도시는 나무와 숲 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땅은 나무를 키우고, 나무는 숲을 이루며, 숲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브랜드 아파트는 숲 한 자락 베어내고 집장사가 뜬금없이 심은 ‘족보’ 있다는 나무다. 그 족보의 권위는 숲 밖 어디로부턴가 온다. ‘캐슬’ ‘리젠시’ ‘귀족’ ‘상류층’ ‘개성’이 추구하는 이미지다. 그러나 어설픈 복제품일 뿐 문화의 향기는 없다.

▷이미지 가치가 덧붙여지면서 브랜드 아파트는 한층 더 유가증권, 주식, 보석을 닮는다. 그래서 재테크에 더 유용해지지만 그럴수록 삶과 땅으로부터 유리된다. 브랜드 아파트는 오로지 통계와 재테크를 기준삼아 문화 없는 아파트 단지를 대량생산해 온 역사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신도시, 신행정도시까지 브랜드 상품으로 만들어 재테크를 부추기려 한다. 이로써 황폐해지는 것은 동네와 도시와 국토만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마음도 함께 황폐해진다. 묘목 전시장이 건강한 숲을 대체할 수는 없다.

강홍빈 객원 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학 hbkang@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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