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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성희]가정폭력의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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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정성희]가정폭력의 어두운 그림자

입력 2005-05-01 18:14수정 2009-10-09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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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에 중독돼 가정에서 폭력을 일삼던 40대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한 여중생의 일기가 공개되면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강원 강릉의 중학생 이모 양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도 폭행하자 아버지를 넥타이로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 양은 아버지가 술 마신 날을 따로 표시해 두었다. 사건 당일에도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아버지의 폭력을 방어하던 중 사고가 일어났다. 이 양의 어머니는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이 양이 태어난 지 100일쯤 됐을 때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이 양의 가족은 가장의 폭력 속에 15년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이 양은 지금 차가운 감옥에서 씻지 못할 죄책감에 얼마나 고통 받고 있을지….

또 다른 가정폭력 사건으로 남편을 청부살해한 아내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것을 놓고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살해된 남편은 결혼 후 마땅한 직업도 없이 도박을 일삼으며 부인과 삼남매에게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이 범행을 계획적으로 모의했고 청부살해라는 방식이 잔혹하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 평생 얻어맞고 살아 온 가족의 분노와 원망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교생인 큰딸도 “엄마가 아빠를 왜 살해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엄마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했다지 않은가.

이런 사례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여성부의 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여섯 가족 중 한 가족에서 가정폭력이 일어난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내로부터 맞고 사는 남편도 많다고 하지만 이는 사안의 독특성 때문에 침소봉대됐을 뿐 아직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매 맞는 아내와 아이들이다.

이들 ‘가족잔혹사’를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인륜을 저버린 살인자의 모습이 아니라 폭력의 공포에 떠는 연약한 여성들이다. 얼마나 아버지가 무서웠을까, 얼마나 남편이 싫었을까?

대부분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귀가시간이 다가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들은 실제 폭력을 당할 때보다도 다가올 폭력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고통스럽다고 고백한다.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가정폭력에 대한 법안도 제정됐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찰에 신고해도 그때뿐이다.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경찰이 개입을 꺼리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면 신고했다고 더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가정폭력의 비극적 특징이 있다. 너무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가정폭력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력과 이웃이 적극 개입하는 것은 우리와 다른 점이다.

5월, 가정의 달이다. 평화와 행복의 상징인 가족,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나는 그 권위와 폭력의 이중성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성희 교육생활부장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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