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원정대 북극점 정복…세계최초 산악그랜드슬램

  • 입력 2005년 5월 1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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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별을 땄다."

박영석(朴英碩·골드윈코리아 이사·동국대 산악부 OB) 탐험대장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단말기를 들고 한발 한발 내밀었다. 북위 89도59.997분, 59.998분…. 북위 90도00.000분. "야, 진짜로 90도라고 찍히네, 북극점이다. 우리가 해냈다."

박대장과 홍성택(洪成澤·39·㈜대한논리속독) 오희준(吳熙俊 ·35·영천산악회) 정찬일(鄭贊一·25·용인대 2005년 졸업) 대원으로 구성된 4명의 북극점 원정대(주최 동국대학교 박영석세계탐험협회, 후원 노스페이스 엔씨소프트 LG화재 동아일보 SBS)가 1일 오전 4시45분(그리니치표준시·GMT 4월30일 19시45분) 북극점에 우뚝 섰다. 지난 3월 9일 오전 1시30분(GMT 3월8일 16시30분) 캐나다 누나부트주 워드헌트섬(북위 83도9.09분)을 출발한지 53일 3시간15분 만의 일이다.

54일 동안 사투를 벌여온 대원들이 대망의 북극점에 도달했을 때 처음 한말은 의외로 "북위 90도가 정말 찍히네"였다. 대원들은 북극점을 14㎞ 남긴 입성 전야에 'GPS에 북위 90도가 찍힌다. 아니다 89도59.999분만 나온다'라며 즐거운 논쟁을 벌였었다.

박대장은 이번 북극점 성공으로 탐험사에 길이 남을 산악그랜드슬램을 세계최초로 달성했다. 산악그랜드슬램이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 완등과 세계 7대륙봉 완등, 여기에 남북극과 에베레스트를 일컫는 지구 3극점 도달을 동시에 달성하는 지칭하는 것.

1993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50m)를 무산소로 등정하며 대기록의 첫발을 내딘 박대장은 14좌(2001년)와 7대륙 최고봉(2002년)을 차례로 완등한 뒤 2004년 남극점을 무지원탐험 최단기록(44일)으로 밟아 산악그랜드슬램에 북극점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북극점은 지난 2003년 한차례 도전해 실패.

원정대는 54일 동안 영하 55도의 혹한과 초속 14m 이상의 눈보라를 동반한 블리자드 속에서 얼음산인 난빙에 막히면 100㎏가 넘는 썰매를 들어서 운반했고 시커먼 바닷물이 드러난 리드에 수차례 빠지는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끝내 목표지인 북극점에 도달했다.

출발점인 워드헌트섬부터 북극점까지의 직선거리는 772.12㎞이나 난빙과 리드의 방해로 거의 매번 운행마다 우회를 해야 했고 조류와 바람으로 딛고 있는 얼음이 남쪽으로 밀려난 까닭에 실제 도보 거리는 2000㎞에 달했다.

박대장은 "지난해 남극점을 성공한 뒤 남극의 별을 땄으니 북극의 별을 따겠다고 했는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돼서 너무 기쁘다, 한국인이 해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역사도 그렇게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성택 대원도 에베레스트, 남극점에 이어 이번 북극점을 밟아 박대장과 함께 지구 3극점을 세계 15번째로 달성했다.

원정대는 경비행기편으로 베이스캠프인 레졸루트로 귀환할 예정이나 현재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대원들을 데리고 올 항공편 출발 일정이 정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북극지방에 전자 및 자기 폭풍이 불어 위성상태가 불량해 위성전화 통화와 사진 송수신 등에 장애를 받고 있다.

◆원정대원 메시지

▽박영석(42·탐험대장)〓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원정기간 동안 아무런 불평없이 저를 따라 준 대원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인류 최로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아닌 한국인이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에도 한국인이 했다고 기록될 것입니다.

지금 많이들 힘들어하실 텐데 단 1%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우리는 위대하고 저력있는 국민입니다. 힘내십시오.

북극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제 자신이었고 가장 힘들었던 것 또한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이겨냈습니다.

▽홍성택(39·장비 및 촬영담당)〓고난에 익숙함과 고통의 인내심이 저를 북극점에 이르게 한 것 같습니다. 북극을 하기위해 또 3극점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마음속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꿈을 이뤘습니다.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오희준(35·식량담당)〓많이 춥고 힘들었지만 극점에선 내 자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함께 고생한 대원들에게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산악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님께 축하를 드립니다.

▽정찬일(25·의료 및 인터넷중계담당)〓35년을 바다와 싸워 오신 아버지, 그리고 그 뒤에서 고생하신 어머니. 비록 53일 이지만 정년퇴직 기념선물로 이 북극점의 눈을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레졸루트=전창기자 jeon@donga.com

▼산악그랜드슬램 의의▼

탐험의 역사는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시련 속에서 만들어져 왔다. 지금까지 산악과 탐험분야에서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업적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과 남북극에 에베레스트 등정까지 포함한 지구 3극점 도달.

여기에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까지 더한 것이 바로 산악그랜드슬램. 박영석씨가 스스로 말하듯 '인류 최초의 일'이다. 한국인의 힘으로 그동안 서구인 중심으로 쓰여 온 세계 탐험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 것.

산악그랜드슬램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를 세계 최초로 달성한 세계 산악계의 신화적 존재인 라인홀트 메스너(62·이탈리아) 조차 포기해 영원히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매스너는 86년 14좌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연달아 완등한 뒤 극점으로 눈을 돌려 89년 남극점을 밟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94년 그린단드 종단원정으로 워밍업을 한 뒤 이듬해인 95년 4월부터 동생 후베르트 메스너(52·이탈리아)와 함께 3차례나 북극점에 도전했으나 끝내 실패했다.

박씨가 산악그랜드슬램을 결심한 때는 히말라야 14좌 중 10번째로 마나슬루(해발 8463m) 등정에 성공한 직후인 2000년 5월. 매스너도 포기했다는 말을 들은 박씨는 "그렇다면 한국인인 내가 해내겠다"고 결심한 뒤 14좌를 진행하면서 북극 원정을 동시에 추진해왔다. 3년여의 준비 끝에 2003년 북극점 원정에 나섰으나 아쉽게 실패. 하지만 박씨는 이에 멈추지 않고 이듬해 무지원 도보탐험 최단기록(44일)으로 남극점을 밟은 뒤 북극점에 재도전해 사상 초유의 대업을 이뤄냈다.

탐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박씨가 도전할 곳이 아직도 남아있을까? 박씨는 "지도를 펴놓고 있으면 무궁무진해요. 지난해 남극점에 성공한 뒤 큰 계획을 하나 세우고 있어요. 구체화되면 공개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과연 박대장의 마음을 설레게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레졸루트=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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