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전방욱]윤리 빠진 생명과학은 위험하다

  • 입력 2005년 4월 29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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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자들이 사람 유전자를 벼에 이식했다는 소식이 ‘인디펜던트’지를 통해 보도되었다. 제초제를 뿌렸을 때 잘 견디는 작물을 만들기 위해 이를 분해하는 효소를 강화시킨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 대신 사람 간에서 주로 해독작용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벼에 넣었다는 얘기다. 광범위한 농약 성분을 분해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관련 과학자들에 따르면 농약을 바꿔 사용해도 작물은 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잡초를 완전히 제거하는 개가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일차적인 반응은 ‘역겹다’는 것이다. 돼지에 사람의 성장호르몬 유전자를 넣어 슈퍼 돼지를 만들었던 경우처럼 이를 식품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식인행위’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종(種)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행해지는 생명공학 실험은 이제 사람과 다른 동식물 사이의 잡종세포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사람과 침팬지의 잡종세포로 임상실험에 사용될 ‘휴먼지’라는 반수반인을 만들겠다고 시도하는 연구진도 있다. 이런 과학의 발전에 경악한 시민들은 ‘생명공학=프랑켄슈타인 과학’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다.

과학 소비자인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 생명공학은 발전할 수 없다. 생명공학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관점들을 비교해 보면 의견 차이는 주로 과학적 사실 자체보다는 윤리, 법, 사회적 관점 등에 근거한 가치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배아 복제를 도입할 수 있겠지만 이 시도가 생명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 평등한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농업생명공학은 제3세계에서 기아를 완화시켜 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메이저 식량회사에 농업을 종속시켜 기아를 심화시키고 농업의 해체를 가속화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명공학의 옹호자들은 신기술의 발달과 실행은 종국에는 인간 의사결정에 의해서 통제되거나 조종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생명공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기술 발달은 실제로 자신만의 내적인 법칙과 논리를 가진다고 주장해 왔다. 기술결정론이라고 하는 이 관점은 모든 새로운 기술은 위험하고 도덕적으로 공격적인가 여부에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실행되고야 말 것이라는 우려를 내포한다.

이 같은 시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자들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일단의 과학자들이 자체적인 규제 지침을 만들고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실험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처럼 과학자들은 실험의 의미와 자신이 수행하는 연구의 파급효과를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여야 한다.

최근 조선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73%의 과학자가 윤리적 원칙 준수가 연구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과학자(93%)는 3년간 생명윤리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의학을 제외하고는 생명과학 전공 학과에 생명윤리 과목이 전혀 개설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갖는 벼의 성공을 단순하게 생명공학의 개가로만 여길 수 있을 것인가. 무모한 과학은 걸림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쪼록 깨달아 우리나라의 과학공동체 내부에서도 과학의 윤리적 법적 사회적 함의를 곰씹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방욱 강릉대 생물학과 교수·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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