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용옥]‘프랑스식 국방개혁’ 속을 뜯어봐야

  • 입력 2005년 4월 29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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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8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프랑스식 국방개혁 방식과 절차를 모델로 하는 국방개혁 법안을 10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프랑스식 국방개혁 방법의 중요성을 언급한 데 따른 국방부의 복명인 셈이다.

프랑스 국방개혁은 병력 감축, 기지 통폐합, 징병제의 모병제 전환, 첨단무기 보강, 군 기동화 등을 핵심 내용으로 1997년에서 2015년까지 3단계로 추진되는 장기계획이다. 개혁 내용이나 추진기간 면에서 볼 때 미국 등 다른 군사 선진국들의 국방개혁 계획과 별로 다를 바 없다.

단지 추진 방식이나 절차 면에서 대통령궁, 총리실, 국방부 등 범정부 차원의 관계기관이 모두 참여하여 국방개혁안을 마련하고 이를 법제화하여 추진한다는 것이 ‘프랑스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과 국방부는 이 점에 주목한 것 같다.

▼軍역할-안보상황 서로 달라▼

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국방개혁의 지속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것은 그 ‘법적 토대’의 성격에 따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적정 규모 국방예산의 장기적, 안정적 배분을 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프랑스식 국방개혁을 모델로 할 때 그 방식과 절차만을 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것에 함축되어 있는 정책적, 전략적 의미를 읽을 필요가 있다.

첫째,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유럽 군사 강국이고 지금도 강국이다. 그들은 ‘현실적 요구’와 ‘미래의 기대’를 모두 충족하는 국방개혁을 독자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구상하는 국방개혁의 내용이나 추진방법이 우리의 ‘현실적 요구’와 ‘미래의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객관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는 계획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 그 국방개혁안의 법제화는 오히려 국방발전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둘째, 프랑스는 또한 군의 임무와 역할이 점차 전통적인 ‘자국 영토 방위’ 개념에서 국제 위기 관리, 분쟁 예방 등 21세기의 새로운 ‘국제 안보 위협’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핵 확산, 테러 등 새로운 위협에 대한 미국의 중추적 역할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신속대응군 등 연합군사력과의 연계성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국방개혁도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한미동맹, 또는 이를 바탕으로 한 다자안보협력의 틀과 조화를 이루며 추진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적 요구와 미래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첩경임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프랑스로서는 이제 구소련과 같은 직접적인 군사위협 세력이 존재하지 않으며, 유럽연합(EU)의 탄생과 더불어 프랑스-독일 국경상의 긴장과 위협도 사라졌다. 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라는 군사 강국의 위치에서 자신의 군사력과 EU의 군사력을 연계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감안하는 국방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프랑스식 방법과 절차를 모방하는 데 치우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군이라는 직접적인 군사 위협 세력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고, 주변은 군사강국들로 둘러싸여 있다. 더욱이 북한의 핵 보유 선언으로 한반도는 이미 ‘핵 상황’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다. ‘핵 상황’에서는 ‘비핵 상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군사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즉 확고한 한미동맹 관계와 한미일 협력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모방하는데 그쳐선 곤란▼

어떤 국방개혁도 독자 능력이든 연합 능력이든 기존 전투역량의 약화를 초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군사 대비 주요 대상의 실체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나 낙관적인 상황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국방개혁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방개혁안의 법제화는 이런 측면에서도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이다.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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