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1년 비트겐슈타인 사망

  • 입력 2005년 4월 28일 20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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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언어 사이의 연관성’이라는 현대철학의 새로운 담론을 만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라는 성과 외에 세속의 소유와 지위를 모두 거부하고 구도자 같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강 부호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돈은 철학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친구와 형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병역 면제자였음에도 제1, 2차 세계대전에 스스로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인생 후반기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교수 자리도 박차고 나와 젊었을 적 생각에 문제가 많았다며 스스로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비판하는 연구에 몰두하다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타계했다.

케임브리지대 재학 시절 그에게 수학을 가르친 버트런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정신적 체험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천재의 완벽한 전형”이라고 찬탄했다. 1차대전 중에 ‘논리철학 논고’를 쓰고 나서 모든 의문을 해결했다고 생각한 그는 단순한 삶을 살겠다며 시골 초등학교 교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교사생활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결국 교사직을 그만두고 헛간에서 살면서 수도원의 정원사로 일했다.

세속적 관점으로 따지면, 주류 중의 주류로 태어났으면서도 철저하게 아웃사이더를 자처한 그를 친구들은 가만두지 않았다. 그는 결국 케임브리지로 돌아가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지만 2차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전쟁에 자원해 병원에서 환자 수송요원으로 일했다. 종전 후 케임브리지대로 다시 돌아가지만 ‘교수라는 허무맹랑한 자리’가 ‘생매장된 존재’처럼 느껴진다면서 교수직을 포기하고 아일랜드의 한 농장으로 낙향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그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지내다 1951년 4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수줍음이 많았고 옷차림은 남루했으며 헛간 같은 집에서 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세상의 아래로 끌어 내렸던 그는, 자신의 철학을 쉽게 풀어 달라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는 침묵하라.”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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