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4>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28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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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먼저 용저(龍且)를 구강으로 보내 경포의 본거지를 치게 해놓고 과인이 가만히 남쪽으로 달려가 한차례 경포를 후려치면 그 일은 아부(亞父)의 말씀대로 될 듯도 싶소. 과인에게 당해 얼이 빠져 있는데 다시 근거지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오면 아무리 경포라도 돌아가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오. 그래서 허겁지겁 구강으로 돌아오는 경포를 용저와 항성이 힘을 합쳐 들이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소.”

그러자 범증이 다짐이라도 받듯 패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허나 너무 시일을 끌어서는 아니 됩니다. 대군을 한군데로 모아서 쓰는 것에 못지않게 재빠른 움직임도 중요합니다. 며칠 안에 경포를 구강으로 내쫓고 전군을 들어 형양으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집중과 속도를 겸한 강습(强襲)만이 한왕 유방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소. 이번만은 아부의 말씀을 따르리다.”

실로 오랜만에 패왕은 그렇게 자신의 고집을 꺾고 범증의 계책을 따라주었다.

그날 밤 먼저 용저가 군사 1만을 이끌고 샛길로 구강을 향해 떠났다. 빠른 말을 탄 사자를 팽성으로 보내 그곳을 지키는 항성에게도 구강을 칠 군사를 내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패왕이 남은 대군을 이끌고 경포를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그때 경포의 군사들은 벌써 탕현(탕縣)을 지나 풍읍(豊邑)에 이르러 있었다. 군사를 거느리고 구강을 떠난 뒤로 이렇다할 싸움도 없이 천리 가까운 길을 달려온 터라 은근히 굳어있던 경포의 마음은 적잖이 풀어졌다.

(천하를 떨게 하는 패왕의 초나라가 겨우 이 정도였단 말인가. 이렇게 허술하니 지난번에 한왕 유방에게 도읍인 팽성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지. 어찌 보면 내가 너무 항우를 크게 본지도 모르겠구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풍읍에 진채를 내리게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풀어놓은 세작들이 달려와 급한 소식을 전했다.

“초나라 대군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패왕이 직접 거느리고 내려온다는 소문입니다.”

그 말을 듣자 경포는 갑자기 패왕과 함께 싸우던 때를 떠올리고 으스스해졌다. 특히 함곡관을 깨뜨릴 때 보았던 패왕의 넘쳐나는 힘과 터질 듯한 기세가 그랬다. 하지만 경포는 평생 강한 적에게 쫓기면서 기른 뱃장과 도둑 떼의 우두머리로 지내는 동안 몸에 밴 기민함으로 패왕의 대군을 맞을 채비를 했다.

“듣거라 .우리는 이제 작은 군사로 항왕의 대군과 맞서게 되었으나 겁낼 것은 없다. 굳이 이겨야할 싸움이 아니라 몇 달 지지 않고 버텨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적을 이곳에 잡아두면 나머지 천하를 평정한 한왕이 대군을 이끌고 와서 대세를 결정지을 것이다. 따라서 힘이 되면 돌아서서 싸우고, 힘에 부치면 달아난다. 치중(輜重)은 되도록 줄이고, 장졸들도 병장기와 갑주를 가볍게 해 달아나고 숨기에 편하도록 하라.”

그렇게 명을 내리고 패왕이 대군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패왕의 대군에 앞서 알 수 없는 소문부터 들어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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