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기억력

  • 입력 2005년 4월 28일 18시 20분


코멘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국회 국정조사나 청문회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증인이나 청문 대상자가 의원들의 추궁을 비켜 가는 화법(話法)이다. 정말 기억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숨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후자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3년 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다. 당시 총리후보자는 재산 문제에 관한 질문에 대해 여러 차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 의원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는 결국 임명동의안 부결로 총리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사람의 정신활동에 관계되는 뇌신경세포는 약 140억 개. 이 세포는 20대 때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뇌세포는 죽어 가고, 한번 죽은 세포는 재생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해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흡연, 음주, 과로, 수면부족, 스트레스도 뇌세포를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다. 의사들은 이를 막기 위해 독서, 글쓰기, 상상, 음악 감상 등 뇌세포를 자극하는 운동을 많이 하라고 권한다.

▷철학자 케벨의 일화가 떠오른다. 그는 어느 날 책을 열심히 읽는 노(老)스승에게 “힘드실 텐데 그렇게 애쓰실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승이 대답했다. “모르는 소리지. 기억력이란 놈은 항상 감시를 하고 단련을 시키지 않으면 나이와 함께 어느 틈에 도망을 치고 만단 말이야. 이제 늙었다고 이놈이 얕볼 테니 더욱 감시와 단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해.”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북대박물관 정원에 있던 나무 ‘히말라야시다’를 “박정희 정권시절의 친일(親日) 잔재”라며 “베어 버리라”고 했다는 보도다. 하지만 유 청장은 “박정희 친일 부분은 기억에 없다”고 말한다. 여성 판사를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법복(法服)을 벗은 전직 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술에 취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좋은 일만 저장하고 부끄러운 일은 비워 버리는 편리한 기억창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기억력 증진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