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바딤 페렐만 감독의‘모래와 안개의 집’

  • 입력 2005년 4월 28일 16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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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니,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모순이 심화돼 급기야 계급투쟁이 벌어지고 그 투쟁은 결국 사회를 더 나은 체제로 진보하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 될수록 싸움은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없는 자와 없는 자, 혹은 아주 없는 자와 조금 있는 자 사이에 벌어진다. 그리고 그 싸움은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달려가야만 끝이 난다.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자칫 그렇게 된 이유와 근본적 원인을 알아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에겐 낯선 이름의 바딤 페렐만 감독의 영화 ‘모래와 안개의 집’은 너무나 수려하고 서정적인 영상 때문에 자칫 그 안에 숨겨진 치명적 관계를 지나쳐 버릴 수 있지만 바로 그 얘기, 그러니까 없는 자와 조금 있는 자 사이의 허망한 싸움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페렐만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변가 외딴 마을에서 벌어진 한 사건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가 엉뚱한 사람들, 영화 속 표현대로라면 그저 길 잃은 새에 불과한 초라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하여금 피 흘리는 대리전을 치르게 한다고 얘기한다.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돕고, 배려하고, 감싸줘야 할 관계인 이들이 결국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과정을 목도하기란 여간 마음 불편하고 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현실이라고, 그러니 그 현실을 외면만 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라고 페렐만은 조근조근 얘기한다.

가정부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캐시(제니퍼 코넬리)에게 유일한 재산은 아버지가 물려준 해변가 마을의 집 한 채. 아담하고 수수한 이 집은 그녀의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30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 마련한 것. 얼마 전 남편과 헤어진 캐시는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행정관청으로부터 500달러의 세금을 수년간 연체했다는 이유로 집을 압류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하루 만에 집을 비워 주게 된 캐시는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자신의 집이 이란에서 이민 온 베라니(벤 킹슬리)라는 남자에게 경매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라니는 이란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던 비밀경찰 출신으로 무슨 이유 때문인지 미국으로 건너와 공사장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인물. 그는 이란에서 가져 온 전 재산으로 캐시의 집을 헐값으로 사들인 후 이를 다시 비싼 값에 팔려고 한다. 캐시는 그런 베라니로부터 집을 되찾으려 하고 베라니는 베라니대로 그녀와 그녀를 돕는 보안관 레스터(론 엘다드)로부터 집을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캐시나 베라니 둘 다, 이들이 차지하려고 하는 것 혹은 끝까지 뺏기지 않으려고 집착하는 것은 단순한 집 한 채가 아니다. 이들이 진정 지키고자 하는 건 인간적인 삶, 자신의 존엄성을 최소한도로 유지하고 또 대우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이다. 집은 그것의 상징일 뿐이다. 다만 문제는 그 존엄성이란 것이 각자에게 나름대로 다른 범위, 다른 내용성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충돌하고 갈등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서로 소통하고 또 이해하는 길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바로 그 점을 깨닫지 못한다. 어쩌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누군가에 의해, 아니면 인간 스스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어쩌지 못하는 어떤 커다란 시스템에 의해 그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조종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시스템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욕망하게 하고, 자꾸만 집착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파국의 결말을 맞게 한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르크스는 정말로 틀렸는지도 모른다. 측량이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까지 뒤섞여 복잡하게 전개되는 현대사회의 갖가지 일은 계급성이나 당파성 정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일 터이기 때문이다. 매 순간 어느 것이 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지녔는가를 판단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영화 속에서 베라니는 결국 그 점을 깨닫게 된다. 캐시는 날개가 부러진 새 같은 존재이고 그래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보살펴 줘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베라니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도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200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 여우조연, 음악상 후보작.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동의대 영화과 교수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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