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목적없는 만남 ‘모모회’의 ‘크리에이티브 엔조이’

  • 입력 2005년 4월 28일 16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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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같은 모임에 참석했던 헤드헌팅 회사 ‘콘페리 인터내셔널’의 이성훈(42) 부사장과 잡지 ‘네이버(neighbor)’의 한현주(42) 사장은 한 강의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강사로 나온 광고기획사 ‘화이트 넥스트’ 백선희 문화산업팀장의 시각이 너무 참신했던 것이다. 이들은 백 팀장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백 팀장은 “어딜 가더라도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을 엿들으며 트렌드를 파악한다”고 말했다. 카페나 버스 안에서 연인들의 속삭임을 듣고, 쇼핑센터에서도 사람들이 집어드는 물건을 유심히 관찰한다는 것.

이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생각을 서로 나누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나이 성별 분야를 가리지 않고 1명씩 더 데려오기로 했다. 자칭 ‘창의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모모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시간을 훔쳐가는 도둑들과 그들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소녀 모모를 그린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이름을 따 왔다. 시간에 쫓기는 바쁜 사람들끼리 모여 ‘크리에이티브 엔조이(creative enjoy)’의 시간을 갖자는 의미다. ‘모모회’를 통해 창의력이 어떻게 나오는지 들여다봤다.》

○ 뷰티숍에서 함께 헤어스타일을 바꾸다.


모모회의 멤버는 11명. 인터넷 교육업체 ‘넷 에이블’ 이승섭(33) 사장, JWT 어드벤처 광고 AE 홍수정(28), CJ GLS 경영전략팀 박재광(38) 부장, CF 감독 채은석(41) 씨, 뷰티숍 ‘라뷰티코어’ 현태(34) 원장, 스튜디오 ‘플러그’ 박재형(29) 실장, 강남이지치과 이지영(33) 원장, 유기농 레스토랑 ‘마켓 오’의 장윤상(43) 사장 등이다. 모모회는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함께할 수 있도록 회원수를 크게 늘리지 않을 예정이다.

이들은 매달 1번씩 새로운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떤다. 모임의 총무인 백 팀장은 최근 뜨는 레스토랑을 찾아내 섭외한다. 이들은 한 번도 같은 곳에서 다시 모인 적이 없다.

“보통 모임은 늘 가는 곳만 가잖아요. 그러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 일단 음식 이야기부터 달라지죠.”

지난해 송년회 때는 식사 전에 노래방에서 모였다. 술을 마신 뒤 노래방에 가는 게 보통이지만 밥 먹기 전 노래방부터 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태 원장의 숍에 가서 단체로 헤어스타일을 바꾼 적도 있다. 함께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었다. 이성훈 부사장은 이를 계기로 회식 대신 직원들이 단체로 헤어스타일을 다듬는 시간을 가졌고, 직원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새로운 팀워크 향상 방안을 찾은 셈이다.

○ 술먹는 모임은 낭비다

한현주 사장은 “우리 모임은 목적 없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뿐”이라며 “꼭 뭘 얻겠다는 게 없이 자유로우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고민도 안 한다”고 말했다.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모여 있으니 자기 얘기만 늘어놓아도 듣는 이들에겐 좋은 정보가 된다.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공부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습니다.”(채은석 감독)

“컨버전스(convergence·수렴)의 시대입니다. 하나만 갖고 히트 상품을 만들기 어렵죠. 뭐든지 인접 분야와의 교집합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가 큰 도움이 됩니다.”(이성훈 부사장)

이들은 모임에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오고 싶은 사람이 나오고 싶을 때’ 나와야 분위기가 즐거워지는 법이다.

아쉬울 때 모임을 마친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더 있고 싶어할 때 누군가가 자리를 정리한다. 2차를 간 적이 거의 없다. 2차에서도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뿐 취하도록 술을 마신 일도 없다. 친목도모를 한다며 새벽까지 술 마시고 노래하는 모임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나눈다.

모모회가 생산적인 모임이 되는 이유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멤버들 덕분이다.

박재광 부장은 4개국 대학을 거친 국제파이면서 전 직장에서 돌연 사표를 내고 1년간 베이징에서 로마까지 마르코 폴로의 경로를 따라 여행한 21세기형 방랑자다. 그는 낙타를 타고 고비사막을 지나다가 대자연에 감동해 단전에서부터 웃음이 터져 밤새도록 웃었다는 이야기로 멤버들을 열광시켰다.

언어학을 전공한 이승섭 사장은 음성학과 음운론을 깊게 공부했다. 그는 루마니아어, 세르비아어 등 생소한 언어도 단어의 철자만 보면 그것이 ‘OO어이고 뜻은 OO’이라는 것을 알아맞힌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의사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는 멤버들에게 외국어는 학문 대상이 아니고 습관이며 언어를 공부할 때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책을 읽으라고 조언한다.

최근 미용업계에서 성공신화를 이뤘다는 평을 듣는 현태 원장도 “사업에 필요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이곳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최근 모임에선 한 회원이 “서울에 외국인이 많은데 말이 통하는 미용실이 거의 없다. 이 마켓을 잡으면 수익성이 있지 않을까”라고 아이디어를 주기도 했다.

‘의지를 갖고 하는 일보다 열정을 갖고 하는 일이 오래간다’ ‘자신감과 자만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등의 문제도 모모회의 토론대상이 된다.

이들은 박재광 부장의 이야기에 ‘필이 꽂혀’ 올해 모두 고비사막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5월 모임에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만나기로 했으며, 지난번 모였던 찻집이 좋아 전남의 녹차밭에도 함께 갈 예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함께 시도하는 것이 모모회의 ‘크리에이티브 엔조이’인 듯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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