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남극일기’ 송강호-유지태의 5색 토크

  • 입력 2005년 4월 27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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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일기’의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 사진 제공 싸이더스 픽쳐스
‘남극일기’의 탐험대장 최도형(송강호). 사진 제공 싸이더스 픽쳐스
송강호(38) 유지태(29). 두 배우는 유난히 긴 웃음소리 외에도 진짜 닮은 게 있다. 바로 체온이다. 싸늘하고 때론 냉소적인 이미지를 가진 ‘차가운’ 배우들인 것이다. 처음으로 두 사람이 만났다. 그것도 ‘차가운’ 영화에서. 남극 탐험대가 겪는 불가사의한 사건과 공포심리를 담은 미스터리 영화 ‘남극일기’(감독 임필성). 송강호와 유지태는 탐험대의 대장과 막내로 만나 종국엔 대결지점에 선다. 전체의 70%가량이 뉴질랜드 설원(雪原)에서 촬영된 이 영화의 개봉(5월 19일)을 앞두고 26일 두 배우가 말했다.

○배우라는 것

▽유지태=배우는 대중과 절묘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 너무 친밀해도, 너무 멀어도 안 되니까. 그 과정에서 오해도 받는다. 어젯밤 인터넷에서 ‘지태는 뭔가…’란 제목의 글을 보고 클릭했다. 이렇게 써 있더라. ‘잘생긴 것 같은데 뭔가 빠져 있고, 몸매가 좋은 것 같은데 뭔가 빠져 있고, 생각도 좋은 것 같은데 뭔가 빠져 있다.’ 아하하하. 대중성과 작가주의 사이에서 모색해 보지만, 때론 그런 내가 ‘나사 하나가 빠져 있는 것 같아 조여 주고 싶은 존재’로도 보일 수 있는 거다. 아하하하.

▽송강호=뉴질랜드 현장에서 지태는 촬영을 마치면 식당에서 숙소까지 21km를 깜깜한데 혼자 걸어가더라. 체중 조절한다고. 주위엔 양 떼밖에 없는데도. 지독해.

‘남극일기’에서 처음 만난 송강호(오른쪽) 유지태. 점차 공황 상태에 빠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두 사람은 8kg과 14kg을 각각 감량했다. 김미옥 기자

○눈(雪)

▽송=영화의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다. 눈, 눈, 또 눈. 눈 속에 남자 배우 딱 여섯. 뭐, 코미디? 없다. 뭐, 액션? 없다. 아름다운 여배우? 없다. 아, 강혜정이 나오지만 잠깐 나오고. 무슨 연극무대에 선 느낌이랄까. 어디 도망갈 데가 없는 거야. 의지할 데도 없는 거야. 내가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까발려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험대에 선 느낌? 스스로 농축돼 있지 않으면 그 넓은 공간(남극)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

▽유=탐험가 박영석(현지 조언 역할) 씨가 워크숍에서 그랬다. “내가 믿을 건 내 앞에 난 스키자국밖에 없다”고. 누구도 기댈 데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앞서간 사람의 스키자국은 생명의 동아줄이다. 너무나 절실한 말이었다(이 말은 결정적 대사로도 쓰였다).

○차가운 남자

▽송=지태랑 나는 사석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안 한다는 게 딱 닮았다. 아카카칵(웃음소리). 그래서 좀 재미가 없지.

▽유=강호 형은 늘 단호해서 좋아. 뭘 물어보든 분명하게 대답해 주니까.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아니다란 식으로.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설령 자기가 부러질지라도, 자기 길을 간다.

▽송=내 성격이 좀 각이 졌지. 그래서 대인관계에선 불편한 게 많아. 아카카칵.

○차가운 영화

▽유=남극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꽃피어나는 따뜻한 휴머니즘, 뭐 이런 이야기라면 얼마나 이해가 쉬울까.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다. 끝까지 미쳐 간다. 귀신 탓도, 유령 탓도 아니다. 영화에서 발견되는 남극일기 속 문구처럼 ‘우리의 욕망이 여기를 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송=왜 미쳐 가는지에 대한 정답을 주지 않으니까. A+B=C, 이런 게 아니란 거지. 그게 매력이고. 그런 차가움이 반대로 따뜻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을 만들어낸다.

○뉴질랜드

▽유=현지인 스태프는 어떤 상황이건, 무얼 찍건 간에 오후 5시가 되면 바로 짐 싸서 집에 간다. 시스템과 인식의 차이다. 그들은 스태프 일을 당장 만족해야 하는 ‘생활’로 보는 거고, 우리(나라 스태프)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인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본다.

▽송=그 사람들, 공무원 같더라. 합리적인 거지만, 사실 그 속에서 무슨 예술이 탄생할까. 영화 찍는 게 회사 출근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는 건데. 사람들은 순박하지만, 뭔가에 여간해선 미치질 않더라. 뉴질랜드? TV를 켜면 다트게임이 생중계되고, 신문에는 고양이가 13일간 갇혀 있다가 구출된 사건이 대서특필되더라. 아카카칵.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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