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섹슈얼 여검객‘아즈미’vs‘킬 빌’

  • 입력 2005년 4월 27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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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검객 아즈미…’
‘소녀검객 아즈미…’
《일본 무협영화 ‘소녀 검객 아즈미 대혈전 2’(29일 개봉)는 1990년 대 중반 일본에서 발간돼 800만 부 이상 팔린 고야마 유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1편의 후속 편이다. 영화는 ‘아즈미’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제시한다. 일본 에도 막부시대에 피 튀기는 살육전을 벌이는 이 16세 여전사를 해부해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속 여전사 ‘더 브라이드(암호명 블랙 코브라)’와 확연히 다른 섹슈얼리티를 발견하게 된다. 두 여전사의 이런 차이는 ‘여전사’란 상품을 소비하는 일본과 미국 할리우드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태생▽

‘아즈미’는 성적(性的) 코드다. ‘여성 닌자’와 ‘여고생’이라는 두 가지 코드를 결합시킨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여성 닌자란 어떤 존재일까. 게임이나 만화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여성 닌자(일본어로 ‘구노이치’라고 함)는 칼과 표창을 들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여전사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실제 일본 역사 속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구노이치들은 매춘부나 기생 등으로 위장한 뒤 여자를 탐하는 적의 간부들을 살살 구슬려 정보를 캐내는 임무를 맡았다.

게다가 아즈미가 입은 전사복은 일본 여고생들이 입는 교복(이른바 ‘세라복’)의 변형. 치마는 초미니인데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은 원조교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는 ‘루스 삭스’(여러 겹으로 접혀 느슨하게 내려오는 양말)를 연상시킨다.

반면 ‘더 브라이드’는 동서양의 문화가 섞인 ‘문화 퓨전’ 코드다. 금발의 우마 서먼은 리샤오룽(李小龍)이 ‘사망유희’에서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착용해 동양 무협영화에 대한 경외를 표하는 동시에 키치(일부러 싸구려 느낌을 내는 것)적 효과를 낸다.

‘킬 빌’

▽행위▽

두 여전사는 명분 및 사회집단을 중시하는 동양문화와 개인 및 가족을 중시하는 서양문화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아즈미는 조그만 체구와 달리 ‘거대담론적’이다. 그녀가 피 칠갑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나처럼 부모 없는 아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적을 제거해 이 땅에 평화를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더 브라이드는 커다란 체구와 달리 복수의 목적이 개인적이다. 빌 일당을 하나씩 찾아가 사지절단을 내 버리는 이유는 결혼의 문턱에 섰던 자신의 삶을 빌 일당이 망쳐놨기 때문이다. 더 브라이드는 대사의 내용과 강도에 있어서도 극단적이고 남성적이다. 싸움 중 상처를 입는 부위도 차이가 난다. 더 브라이드는 주로 얼굴과 목에 상처를 입는 반면(외향적 상처), 아즈미는 왼쪽 허벅지에 앙증맞은 칼자국(내성적 상처)을 갖고 있다.

두 존재의 섹슈얼리티는 둘을 바라보는 적(주로 남자)들의 시선에서 결정적으로 구분된다. 더 브라이드를 쏘아보는 ‘죽음의 88인회’는 마치 ‘관광 나이트’에 온 가정주부를 볼 때와 같은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시선. 반면 아즈미를 훑어보는 도요토미 일파의 시선은 ‘콜라 텍’에서 만난 10대 소녀를 바라보는 음흉한 중년의 표정이다. 물론 결과는 아즈미의 칼에 아저씨들이 산산조각나지만.

아즈미와 더 브라이드의 대사 비교
아즈미대사더 브라이드
“거짓말이라고 말해 줘.”(절친한 동료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또 다른 동료의 말에)가장 여린 대사“빌, 이 아긴 당신 피야.”(두목인 빌에게 총 맞기 직전)
“지금 그 말, 그대로 갚아주마.”(“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는 적의 말에 응답하며)가장 강한 대사“목숨이 붙어 있는 놈들은 알아서 도망가라. 하지만 잘려나간 사지는 두고 가라. 그건 내 몫이야.”(‘죽음의 88인회’를 단칼에 절단 낸 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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