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42>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4월 26일 19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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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패왕 항우는 지난번 거록(鉅鹿) 싸움에서 그랬던 것처럼 단숨에 전군을 몰아 하수(河水)를 건너지 않고 복양 성밖에 진채를 내린 뒤 조나라의 형세부터 살폈다. 장수들에게 군사를 갈라주고 하수를 건너가 여기저기 조나라의 성읍을 찔러보게 하는 식이었다.

“장군들은 한신에게 항복한 조나라 성들을 들이쳐 엄하게 그 죄를 물으라.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빼고는 모두 산채 묻어 우리 서초의 위엄을 세우라!”

여기저기로 장졸들을 갈라 보내면서 패왕이 내린 명은 그랬다. 이겨 차지한 땅을 다독여 군량이나 병졸을 거둬 쓸 수 있는 새로운 근거지로 삼을만한 치자로서의 안목은 패왕에게 전혀 없었다. 그런 패왕의 명을 받은 장수들은 저마다 조나라의 성을 들이쳐 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불을 놓고 재물을 빼앗았다.

그렇게 되자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던 조나라의 인심이 차츰 한신과 장이에게로 돌아섰다. 한신과 장이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힘써 조나라의 성들을 구해냈다. 그 바람에 복양에 있는 패왕의 본진에는 여러 곳에서 오는 전령들로 분주하였다.

“용저 장군이 삼호(三戶)까지 올라갔다가 한신과 장이의 협격을 받고 되쫓겨 났습니다.”

“종리매 장군이 장수(장水)를 건너 한단(邯鄲) 옛터에 진채를 내리고 군사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곧 극원(棘原)으로 올라가 거록을 노릴 것이라고 합니다.”

“환초 장군이 백마를 떨어뜨리고 태원(太原)까지 올라갔다가 조나라와 한나라 군사들에게 막혀 발이 묶여 있습니다.”

패왕은 기뻐하기도 하고 성내기도 하면서 그런 소식을 들었으나, 자신이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밥을 할 솥과 음식을 찔 시루를 깨고 장수를 건너던 지난날의 대장군 항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형양에 있는 한왕 유방의 주력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듯했다.

그 사이 조나라를 쥐어짜듯하여 세력을 키운 한신과 장이가 손발을 맞춰 초나라 군사들을 몰아내니 곧 전선은 장수를 사이에 두고 오락가락하는 형국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쪽 팽성에서 달려온 유성마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구강왕 경포가 기어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벌써 열흘 전에 대왕께서 보내신 사자를 목 베어 돌려보낸 뒤 모든 구강군(九江軍)을 이끌고 회수를 건넜다고 합니다. 단숨에 기현과 상현을 휩쓴 뒤에 지금은 탕현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풍(豊)패(沛)까지 대왕의 땅이 아니게 되고, 팽성으로 오가는 길도 끊겨버릴 것입니다.”

팽성에 두고 온 항성(項聲=항백)이 보낸 사자가 전한 급보는 그랬다. 패왕이 채 다 듣기도 전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 얼굴 시퍼런 도적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감히 과인이 보낸 사자를 목 베다니!”

그러더니 좌우를 돌아보며 군막이 날아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장수들에게 사람을 보내 내일까지 본진으로 돌아오게 하라. 당장 구강으로 달려가 그 엉큼한 도적놈의 가죽을 벗기고 삼족을 멸하리라!”

그걸 보고 범증이 다시 나서서 말렸다.

“대왕. 고정하십시오. 이는 바로 경포를 제 편으로 꾀어 들인 한왕 유방이 바라는 바입니다. 결코 유방의 잔꾀에 걸려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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