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오명철]임꺽정과 무대 찾아 떠난 고우영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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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고우영 선생이 67세를 일기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만화를 애독한 사람으로서 삼가 명복을 빈다. 그의 유머와 순발력, 만화는 물론이고 술 골프 낚시 등 잡기(雜技)에서도 지고는 못 배기는 승부사 기질 등 평소의 면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땅의 40대 이상 한국 남자들은 고우영의 ‘임꺽정’ ‘수호지’ ‘삼국지’ 등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치(理致)에 무릎을 치고 ‘고우영 버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에서 갈증을 풀었다. 그는 만화를 통해 가정과 학교가 알려주지 않은 것을 당대의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준 ‘강호(江湖)의 스승’이었다.

1970년대는 흔히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의 연대(年代)’라고 불린다. 그러나 ‘고우영 만화’를 빼놓고 70년대를 논할 수는 없다. 엄밀히 말해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가 대학생들의 제한적 엘리트문화였다면 ‘고우영 만화’는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포괄적 문화현상이었다.

그는 또한 만화의 독자를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끌어올린 ‘성인만화’ 시대를 연 개척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근엄한 고전(古典)을 번득이는 유머와 해학으로 재해석해 냄으로써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만화는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작가적 소신이었고, 구어체 대사로 캐릭터들에 생명력과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그의 만화를 통해 잠시나마 세상사의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천하장사 임꺽정’과 ‘신의(信義)의 화신 관우’는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지도자상(像)이었다. ‘쪼다 유비’와 ‘반(半)토막 무대’는 그 시대 고단한 민중에게 위안과 웃음을 주는 인간상이었다. ‘수호지’의 요부(妖婦) 반금련은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만인의 연인’이었고, ‘가루지기’의 변강쇠는 ‘고개 숙인 남자’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는 우상이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노골적이지만 추하지 않고, 익살스럽지만 천하지 않은’ 성(性)을 가르친 ‘잘 익은 선배’이기도 했다. 코밑과 사타구니가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한 사내아이들은 그의 만화를 통해 ‘남성’을 자각하고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웠다. 중고교뿐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그의 만화가 실린 스포츠신문을 면별로 잘라 반 전체가 돌려가며 읽곤 했다. 시험 때면 교탁에 슬그머니 그의 만화가 실린 신문을 올려놓아 감독 교사의 눈을 피하는 아이디어가 개발되기도 했다.

그는 또 국내 스포츠신문의 도약을 이끈 공로자로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 스포츠신문은 1971년 2만 부 정도이던 발행부수가 그의 만화 연재로 4년 만에 30만 부로 늘어났다. 독자들이 연재소설이나 특정 칼럼이 아닌 연재만화를 보기 위해 신문 가판대로 달려가게 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우리 세대는 고우영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졌다. 그가 좀 더 살지 못한 것도 고된 만화 창작 때문이었지 싶다. 만화의 거인이여! 임꺽정 무대 관우, 그리고 반금련이도 만나 즐겁게 새 삶을 사십시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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