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과 여성경제 활동]출산-육아 국가서 부담

  • 입력 2005년 4월 26일 03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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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라.” 1990년대 이후 미국 프랑스 스웨덴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경활률)이 크게 높아지면서도 출산율 하락세는 멈추거나 오히려 올라갔다. 국내 국책 연구기관들은 최근 이것에 주목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적 통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 출산율은 떨어진다’는 것. 그러나 이는 1990년대 이전의 경험이며 최근 선진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덴마크 핀란드 미국 호주 영국 등은 1970년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노력으로 여성을 일터로 끌어내면서도 현재 출산율은 1990년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 나라의 여성 경활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70%대에 이른다. 특히 프랑스는 2003년 여성 경활률이 72.5%로 1990년(56.6%)에 비해 15.9%포인트 늘어나면서 같은 기간 출산율도 1.8에서 1.9로 높아졌다.

덴마크도 여성 경활률이 1970년 58.0%에서 1980년 71.4%로 늘면서 출산율은 2.0에서 1.5로 떨어졌다. 하지만 2003년 경활률은 75.1%에 이르렀으나 출산율은 1.7로 1980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반면 한국은 출산율이 1995년 1.65에서 2004년 1.19로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여성 경활률은 10년간 48.4%에서 50.0%로 1.6%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노동연구원 장지연(張芝延) 연구위원은 “출산율과 여성의 경제활동은 서로 연결된 문제”라며 “정부가 이 문제에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가 출산과 육아 부담을 떠안는다

선진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기혼 여성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한국과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KOTRA 임주현(林周晛·32) 차장은 2001년부터 4년 6개월간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했던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별천지’라는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서 두 살배기 딸을 둔 엄마가 제대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나요? 파리에선 불편한 점이 거의 없었어요.”

파리에서 임 차장의 하루는 아침 7시 30분에 딸을 시립 탁아소에 맡기면서 시작됐다. 보모 1명이 돌보는 아이는 2, 3명 정도. 한국의 보육원 보모는 5, 6명의 아이를 돌본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탁아소가 오후 9시까지 아이를 맡아주기 때문. 일하는 부모를 배려해 탁아소가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했다.

조세연구원과 노동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출산율과 여성 경활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유럽 국가는 1990년대부터 직장을 가진 기혼여성의 출산 및 육아 부담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떠안은 것이 특징이다.

2004년 말 현재 한국은 보육시설 유치원 학원 등 8세 미만 영유아 서비스 시장에서 정부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스웨덴(83%), 프랑스(83%), 벨기에(81%)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영유아 서비스를 민간에 맡기는 미국(41%)보다도 낮다.

각종 조세제도와 육아휴가의 차이는 더 크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보육비용에 대해 세금 자체를 깎아 주는 세액공제 제도를 운영하고, 일하는 기혼여성에게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출산휴가 외에 1년가량의 육아휴가도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는 유급으로 지원한다. 미국과 한국만 무급이다.

조세연구원의 김현숙(金賢淑) 연구위원은 “직장을 가진 기혼여성에 조세감면 등 각종 제도를 통해 인센티브를 주면서 출산 및 양육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성공한 미국

서구 선진국이 모두 똑같은 정책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은 출산 및 육아서비스를 국가가 나서서 해결한 반면 미국은 시장주의 원칙으로 풀어 나갔다.

미국은 육아 문제를 정부가 전적으로 해결해 주기보다 일하는 기혼여성에게 세제 혜택을 집중시켜 여성의 경제활동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노동시장에서 여성 차별을 엄격히 규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성을 차별한 기관이나 기업은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여성의 고용뿐만 아니라 승진에서도 차별 금지를 강조해 직종의 성별분리 현상을 완화시키고 남녀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 가장 성공한 국가로 꼽힌다. 미국의 출산율(2.1)이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것은 이민을 활발하게 받아들이는 정책이 한몫을 했다.

노동연구원 부가청(夫佳淸) 연구원은 “미국은 유럽보다 복지에 소극적이지만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은 차별을 적극적으로 시정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 두 토끼 놓치는 한국

한국처럼 출산율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동시에 낮은 나라는 많지 않다. 두 지표가 모두 낮은 나라는 한국 외에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만 있을 뿐이다.

두 지표의 관련성을 일찍부터 주목해 온 기은경제연구소 임일섭(林一燮) 연구위원은 “여성의 사회진출 욕구는 팽배해 있지만 사회 시스템이 이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서 “어렵게 직장을 잡은 기혼여성에 대한 배려도 부족해 두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이냐 가정이냐’ 선택 강요하는 사회=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선진국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1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꾸준히 증가하다 50대 후반에 들어서야 감소한다. 그러나 한국은 20대에는 64.4%였다가 30대에 53.8%로 10%포인트 이상 뚝 떨어진다. 출산과 육아 부담이 집중되는 30대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포기하는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의 직장 기혼여성은 출산 이후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을 강요당하고 상당수가 일을 포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개발원의 조사결과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1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기혼여성과 자녀가 아예 없는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각각 17.1%와 43.1%. 두 집단의 격차가 26.0%포인트나 된다는 것은 어린 자녀가 여성의 사회활동에 얼마나 큰 부담인지 보여준다.

대통령자문 고령화 및 미래사회연구회에 따르면 자녀가 1∼5세인 여성의 취업률은 32.6%, 6∼8세인 경우는 48.8%다.

▽출산이 손해가 되는 사회=한국에서 출산은 직장에 다니는 기혼여성에게 손해가 된다.

이렇다 보니 직장에 다니는 기혼여성은 출산을 기피하거나 최대한 늦추면서 되도록 적게 낳으려고 한다. 이에 따라 1970년 4.53이었던 출산율은 1980년 2.83, 1990년 1.59로 급격히 떨어졌고 요즘은 1.19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선배가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본 미혼여성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독신을 선택한다. 이에 따라 여성의 초혼연령은 1960년 21.6세에서 작년에는 27.5세로 올라갔다. 초혼연령이 늦어지면 출산율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저(低)출산의 원인에는 외환위기 이후 경제사정 악화와 과도한 양육 및 교육비 부담도 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 주부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최은령(崔恩鈴) 연구원은 “여성이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내린 합리적인 판단이 국가 전체적으로는 출산율 하락이라는 재앙을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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