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무곤]국립극장 일대 문화단지로 꾸미자

  • 입력 2005년 4월 2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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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 대규모 건설이나 토목사업을 한두 개 벌이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다. 서울만 해도 청계천 복원, 뚝섬 서울의 숲,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DMC) 등 개발계획이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와중에 ‘문화의 세기’ ‘문화입국’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문화적 인프라 없이 선진국으로 직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문화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문화예술의 태반(胎盤)이라 할 예술 전용극장이 태부족이라는 것이다. 판소리를 음색이 전달되지도 않는 서양식 공간에서 공연하고, 객석에서 무대가 다 보이지도 않는 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는 식이다. 분장실에서 무대까지가 미로 같아서 배우가 분장을 하고 100m 달리기를 해서 뛰어와야 다음 장면에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극장 사정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올해 1월 국립극장 김명곤 극장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서구식 무대구조 속에 전통 공연물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넣다 보니 예술 양식을 발달시킬 수 없다”며 “국립극장 전속단체별 전용극장 확보가 시급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민족의 문화 정체성의 상징인 국립극장에서 이런 신음소리가 나오게 하고도 ‘문화입국’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난센스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고유의 무대 양식을 담아내고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무대, 새 극장을 만들어야 한다.

국립극장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세워져 올해로 개관 55주년을 맞은 아시아 최초의 국립극장이다. 원래 명동에 있던 것을 1973년 박정희 정권이 지금의 장충동으로 옮겼다. 당시 군사정권은 문화예술을 대중과 어울리지 않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해 자가용을 타고서야 갈 수 있는 ‘특별한’ 곳에 옮겨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하철이 보급되고 자가용이 일반화된 지금 복잡한 도심 한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고맙다.

국립극장 일대는 서울의 상징이자 시민의 허파인 남산과 동국대 장충단공원 충무아트홀 및 3개의 특급 호텔이 병존하고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문화지대다. 청소년들이 밀집하는 동대문 패션타운, 대학로와 연계되며 충무로 명동 이태원 등 도심 번화가와도 가깝다.

이러한 국립극장 주변을 복합문화예술단지로 만들어 미국의 링컨센터나 케네디센터, 프랑스의 퐁피두센터, 영국의 사우스뱅크 아트센터, 일본의 우에노공원 아트센터를 능가하는 꿈의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 첫 단추는 현재 남산 국립극장 건너편에 있는 자유센터 땅을 매입해 전통예술 전용극장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극장과 이 제2의 국립극장을 구름다리로 연결해 하나의 국립예술센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공간에 교육아카데미와 예술공연사박물관을 세우면 명실 공히 한국 공연예술의 메카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변의 남산, 장충단공원을 연계해 문화테마거리로 조성하고, 넓게는 이태원 관광특구와 동대문을 연결하는 관광벨트로 꾸민다면 품격 높은 관광자원도 될 것이다.

마침 서울시는 5월 1일부터 충무로역과 동대입구역, 국립극장을 잇는 남산 순환버스를 운행키로 했다. 가족들과 함께 이 노란색 버스를 타보자. 그러면 국립극장과 남산 일대가 수많은 유적과 자연, 그리고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보물이었음을 발견할 것이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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