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명진]‘문화대국’ 일본

  • 입력 2005년 4월 24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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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 청소년 대중문화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도쿄(東京), 런던을 잇는 축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확산된다고 한다. 이들 도시 중 한 곳에 자리 잡으면 나머지 세 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이어서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대개 리더 역할을 하는 곳은 도쿄이고, 특히 변화 속도가 빠른 패션은 단연 일본 여고생들이 주도권을 행사한다던가. 세계의 패션디자이너들은 도쿄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를 활보하는 여고생들을 살펴보면서 2, 3년 뒤 세계 패션의 방향을 감 잡는다고 한다.

▷마루베니 연구소의 한 통계에 따르면 1992∼2002년 10년 사이 일본의 총수출은 15%가 늘었는데 유독 문화상품 수출은 300%나 증가했다고 한다. 2002년 일본의 문화상품 수출 총액은 150억 달러로 할리우드 영화와 비디오의 총수출액 88억5000만 달러의 거의 두 배에 가깝다. 일본 재무성은 2015년에는 문화상품 수출 규모가 34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세기 초엽에는 군국주의 팽창세력으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경제대국으로 떠오른 일본이 21세기에 들어서는 문화대국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가가치가 높고 나라의 이미지 제고에도 효과적인 문화수출 전략은 과연 일본이 무력으로도, 경제력으로도 달성하지 못한 세계적 위상을 확보하도록 해 줄 것인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대중문화가 폭발적인 수출 성장세를 보인 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이 촉발한 세계적 반미(反美) 정서가 큰 몫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최고의 대중문화 수출국인 미국산에 비해 일본산은 좀 더 중립적인 ‘대안(代案) 오락문화’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화수출에 있어서 그 나라의 대외 이미지가 중요한 요즈음 일본이 과거 식민지 잔혹사 때문에 주변국과 계속 분쟁을 일으키면 ‘문화대국’으로 향하는 전선에 이상이 없을 것인가.

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언론학 mjinpar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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