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진호]법률구조제도 활용하자

  • 입력 2005년 4월 24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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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은 싸움이다. 법정이라는 링에서 법이라는 룰에 따라 싸운 후 법관이라는 심판의 판정을 받는 것이다. 다만 물리력에 의하지 않고 법과 논리와 증거로 공격과 방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구잡이 분풀이식보다는 차분하게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소송에는 무기평등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마치 서부활극의 총잡이들 용어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소송의 양 당사자가 공격방어를 제출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는 평등하게 보장된다는 의미다.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회만 대등하게 주어질 뿐이며 어떤 이론과 증거로 어떻게 대응할지는 순전히 당사자의 책임이다. 무기는 주되 언제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가는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대립된 당사자가 이해관계로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에 법관이 어느 한쪽에게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세상이 복잡하고 각박하며 사회생활이 다양해지다 보니 원하건 원치 않건 송사거리도 많아진다. 꼬이고 뒤틀려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이래저래 법률전문가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변호사 간판이 즐비하게 걸려 있지만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마땅치 않고, 상담료나 소송비용 때문에 지레 움츠러들기도 한다. 이러한 서민들을 위해 참으로 요긴한 곳이 있으니 곧 대한법률구조공단이다.

법률지식이 부족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법적보호 수단을 제대로 강구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법률적 지원을 해 주기 위해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150여 명의 변호사 자격자를 비롯해 수많은 직원이 도우려고 대기하고 있다.

법률상담은 전화건 인터넷이건 직접 면대하건 누구에게나 무료다. 스스로 소송하는 사람들을 위해 웬만한 서류도 무료로 작성해 주고, 형사사건을 법률구조 할 때에는 무료변론을 해 준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농어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보훈대상자,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 대해서는 무료로 소송을 대리해 준다. 심지어 소송에 드는 인지비용 등까지 당사자에게서는 받지 않고 조흥은행 농협 수협 등의 도움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해결해 주기도 한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월소득 200만 원 이하 등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국민에 대해서는 시중의 수임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매우 싼 실비만 받는다.

전국의 법원 검찰이 있는 곳이라면 구조공단이 없는 곳이 없다. 현재 국민의 3분의 1이 그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간다. 복지증진 차원에서 하는 일이지만 국가에서 이런 정도까지 하나 싶을 정도다. 공단은 친절하고 효율적으로 서비스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곳에서는 문턱이 높다느니 괜스레 주눅 든다느니 권위적이라느니 수임료가 비싸다느니 하는 불평을 들을 수 없다.

흔히들 공짜라면 귀한 줄 모르듯, 무료나 실비라고 하니 변론을 제대로 해 줄까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사정을 너무 모르는 말이다. 근 30년 가까이 변호사 개업을 해 왔던 나의 경험에 따르면 소송대리는 얼마나 성실하게 열심히 해 주느냐가 관건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지난해 1년간 4만8500여 건의 민사소송과 2만100여 건의 형사변론을 했고, 99만6000여 건의 법률상담을 했다. 이중 민사소송의 승소율은 82.6%에 이르며 형사사건의 경우 무죄 공소기각 벌금 집행유예 판결률이 55%다.

국가에서 마련한 이런 도움의 손길을 온 국민이 잘 활용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마침 25일은 법의 날이다.

허진호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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