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진]盧대통령 직설적 외교 실익 없다

  • 입력 2005년 4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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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 주는 일본 관련 언행은 국제문제 전문가의 눈에는 전통적 외교관행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치고 있다. 청와대의 독주와 코드정치의 속박으로 한국외교의 기능이 마비되고 약 60년간 축적해 온 한국외교의 역량과 자산, 전문성이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이다.

왜 대통령 자신이 이웃 우방에 대해 최상급의 부정적 형용사를 골라 직설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는가. 러시아의 실효지배 하에 있는 4개 도서에 대해 일본이 북방영토의 날을 제정했을 때, 또 일본이 실효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를 중국이 자국 영해 내에 명시하고 법제화했을 때 소련과 일본은 냉정하게 대응했다. 한국의 반응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항간에는 노 대통령의 일련의 언행에 담긴 청와대 핵심 세력의 의도를 설명하려는 몇 가지 해설이 나와 있다.

첫째, 일본 그리고 간접적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을 견제하려는 대북 원호사격이라는 설이다. 최근 미국과 일본에서 필자가 만난 정부 인사들도 이 설을 제기했다.

둘째, 친일인사 청산 등 기득권 보수 세력을 꺾고 한국사회의 근본적 개혁을 추진하는 사업의 일환이라는 설이다.

▼정치와 외교는 달라야▼

셋째, 4월 말 선거, 내년 지방선거, 차기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국내 정치용이라는 설도 있다. 국내 여러 문제와 북핵 문제로 고조된 대정부 비판 여론을 전환시켜 국내 정치 기반 공고화를 노리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넷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특별한 역사관, 주체사상에 입각해 미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노선의 정책화라는 설이다.

다섯째, 정책결정 실세들의 전문성 결여와 코드 중시로 전문집단이 배제된 데서 오는 결과라는 설 등이다.

아마도 이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이유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의도는 그렇다 해도 노 대통령이 취해 온 특이한 외교행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외교정책 이론에 의하면 국가지도자는 권력 장악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습득한 전략 전술을 외국과의 분쟁에서도 적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주네프, 고르바초프가 각각 베를린 봉쇄 위기, 쿠바 미사일 위기, 1973년 중동전쟁, 독일의 통일 과정에 대응하면서 나타낸 외교 협상 스타일은 그들이 각자 정권 장악 투쟁에서 성공했을 때 사용한 방식과 같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노 대통령의 경우도 집권 이후 대미 외교에서 보인 태도나 올 2월 이후 분명히 나타난 대 일본 외교 협상 스타일에 그의 대권 도전 과정에서 터득한 전략 전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교 행태는 위에 열거한 구소련의 사례처럼 실패한 외교로 끝난 경우가 많다. 자기 행동이 상대방에게 주는 영향을 무시 내지는 오판하는 것이다.

필자는 노 대통령의 대일 외교의 실효성에 회의적이다. 한국이 일본 정부에 촉구하고 있는 독도와 교과서 문제에 관한 구체적 요구사항에 일본 정부가 긍정적으로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관철 가능성이 없는 요구를 내걸고 국가 위신과 역량, 자산을 무기한 투입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현명한 외교가 아니다. 머잖아 한국 정부는 휘두르던 주먹을 슬그머니 내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은 통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한국이 치러야 될 대가를 생각하면 한국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對日엄포 부메랑 우려▼

일본은 노 대통령의 최근의 외교 행태가 비우호적인 것이며 일본 국익에 손상을 줬다고 보고 있다. 소위 우익세력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한국에 대한 불신감과 비우호적 감정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 일본 정부가 대남북한 정책이나 한국 이익에 직결되는 여러 문제에 대응할 때 한국을 배려하려는 의욕을 현저히 잃게 될 것이다.

청와대의 작품이 갑자기 발표되면 외교부가 국제사회에 해명하느라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에 많은 식자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통령의 ‘말씀’으로 외교안보 기관들이 뭔가를 깨우치게 돼 주어진 목표의 달성에 동분서주하는 시스템은 국가의 외교 안보 이익 수호를 위해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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