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놓은 17대 국회…의원 자리비워 법안심사 소위 연기

  • 입력 2005년 4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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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들을 찾아라.”

17대 국회에서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입법 부실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4월 임시국회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의원들의 회의 출석률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법안의 세부 사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소위원회 회의는 재적의원 절반 정도의 의원들만이 참석해 간신히 꾸려지는 실정이다.

4·30 재·보궐선거 유세가 본격화되면서 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행정실 직원이나 보좌관들이 의원을 찾아 국회를 헤매는 촌극도 벌어진다.

▽“재·보선 때문에”=22일 경북 영천의 4·30 재·보선 유세장에는 한나라당 의원이 무려 16명이나 집결했다. 예상과 달리 판세가 불리해지자 “영천을 사수하자”며 당 지도부와 대구, 경북지역 의원들이 모였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국회가 열리고 있지만 선거가 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조세법안심사 소위원회는 21일로 잡혀 있던 회의를 열지 못했다. 의원들이 “재·보선 유세를 나가야 하니 미뤄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20일 열린 재경위 금융법안심사 소위원회는 회의 시작 당시 10명의 소속의원 중 한나라당 최경환(崔炅煥) 의원 1명만 나와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몇몇 의원은 “이렇게 썰렁한데 회의가 되겠느냐”며 다시 자리를 비웠다. 결국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뒤에야 의원 5명이 모여 개회됐다.

같은 날 열린 농림해양수산위 전체회의도 의원들이 나오지 않아 예정보다 40분가량 늦어졌다.

▽‘도장만 찍고 빠지면 된다?’=일단 회의에 참석했더라도 얼마 뒤 자리를 빠져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참석한 뒤 빠져나가도 출석한 것으로 체크되기 때문. 언론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임위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의원 보좌관은 “법안을 의결해야 할 때 정족수를 못 채우고 쩔쩔매는 경우도 많다”며 “소위의 경우 방송 카메라도 없어 의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습적으로 빠진 의원들도 있다. 자민련 이인제(李仁濟) 의원은 17대 국회 본회의 출석률이 7%대에 그친다. 39번의 회의 중 단 3번만 참석했다. 민주당 김홍일(金弘一),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 열린우리당 정의용(鄭義溶) 의원 등은 60% 수준이다. 출석률이 60∼70%인 의원들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혐의 관련 재판 준비 △잦은 해외출장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당 지도부 의원들의 잇단 결석은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또 무더기 졸속입법 우려”=이대로라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무더기 졸속입법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4·30 재·보선이 끝난 이후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월 4일까지는 단 사흘이 남는다. 2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 110건이 마지막 날 무더기 통과된 전례가 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이남영(李南永) 교수는 “의원들이 선거나 지역구 행사보다 의정활동을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 국회의 정책이나 법안 논의 수준이 선진국보다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이지현(李知晛)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민생 법안들이 밀려 있는데 선거 유세에 ‘다걸기(올인)’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17대 국회의원 본회의 출석률 최하 10위
순위의원소속 정당출석률(%)의원 측 설명
1이인제자민련 7.69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재판 중
2이정일민주당53.85불법도청건으로 재판 중
3김홍일민주당61.54건강 문제
4이강두한나라당61.54작년 9월 교통사고로 건강 악화
5서혜석열린우리당62.501월 비례대표 승계 뒤 현재까지 8회 중 5회 출석
6정동채열린우리당64.10문화관광부 장관 업무 수행
7김근태열린우리당64.10보건복지부 장관 업무 수행
8정의용열린우리당66.67국회의장 해외순방 수행 등 잦은 출장
9강성종열린우리당66.67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
10정의화한나라당66.67지난해 대표최고위원 선거 시 유세
자료: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및 각 의원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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