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 外

  • 입력 2005년 4월 22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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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슬라보예 지젝을 미워하는가/토니 마이어스 지음·박정수 옮김/278쪽·1만2500원·앨피

◇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빌 애쉬크로포트, 팔 알루와리아 지음·윤영실 옮김/310쪽·1만2500원·앨피

유럽의 소국 슬로베니아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은 현재 서구에서 가장 각광받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고상한 철학을 ‘저급한’ 대중문화와 ‘더러운’ 정치현상에 접목시키는 크로스오버 철학자다. 지젝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조미료로 삼아 스티븐 킹의 소설과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등 대중문화를 진수성찬으로 요리해 낸다. 또 9·11테러나 이라크전과 같은 작금의 국제정치 현상을 칸트의 윤리학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거침없이 난도질한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2003년 작고)는 지젝에 훨씬 앞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중동의 약소국 팔레스타인 출신인 그는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프랑스의 문학이론가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 개념을 비롯해 지식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푸코의 담론이론을 발전시켜 자기 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는 문학 작품을 포함한 모든 텍스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제휴관계의 그물망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양은 동양을 자신과 다른 타자로 설정하고, 그에 부응하는 지식만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동양을 재구성하고 지배했다는 것이다.

인문학 분야 현대 사상가들의 이론을 소개하는 영국 루틀리지 출판사의 ‘비판적 사상가들(Critical Thinkers)’ 총서의 1, 2권으로 소개된 지젝과 사이드에는 많은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슬로베니아와 팔레스타인 같은 변방의 지식인이라는 점이다. 둘째, 학자의 아이디어를 전혀 다른 분야에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데 능숙하며, 셋째, 문화적 담론을 현실문제에 과감하게 접목시킨다는 것이다. 넷째,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누가…’는 지젝의 지적 유희가 기본적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삼각대 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 그가 대부분의 현대철학자와 달리 사유하는 주체로의 회귀를 강조하며, 포스트모더니즘과 ‘제3의 길’은 결국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점에서 데리다, 하버마스, 기든스와 차별성을 띤다.

‘다시…’는 사이드가 단지 문화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제국주의가 구축한 문화 텍스트를 뒤집어 읽는 방식을 통해 주류에서 추방된 이들을 위한 정치학을 구축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 그는 추문을 두려워하는 ‘비난의 정치학’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폭로하고, 그 추문의 한복판에 뛰어듦으로써 제국주의적 질서를 전복할 힘을 발견하려 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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