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민주주의를 말한다’…왜 ‘민주주의 聖戰’ 나섰나

  • 입력 2005년 4월 22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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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이라크 전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바그다드의 알파르두스 광장의 사담 후세인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말한다’의 저자들은 자기 견해를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광장’의 유무로 자유사회와 공포사회를 구분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3년 4월 이라크 전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바그다드의 알파르두스 광장의 사담 후세인 동상이 철거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말한다’의 저자들은 자기 견해를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는 ‘광장’의 유무로 자유사회와 공포사회를 구분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민주주의를 말한다/나탄 샤란스키 외 지음·김원호 옮김/359쪽·1만5000원·북@북스

어떤 책이든 읽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 점에서 이 책을 읽는 평자의 위치는 2005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사실은 소련의 반체제 인사에서 이스라엘의 우익 정치인으로 변신한 나탄 샤란스키의 예사롭지 않은 인생 역정이 반영된 이 책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게 만든다.

예컨대 저자들은 2001년 9·11테러를 “걸프전 직후 중동 지역에 형성된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이용해 중동 지역에 자유를 가져오고 이 지역의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결과”로 설명한다. 서방 세계는 ‘정책 연계’를 통해 이 지역의 민주화를 위해 적극 개입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최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민주사회로 만들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결의에 고무됐다고 고백한다. 과연 9·11테러를 미국이 중동 지역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범주에 전쟁이 포함될 수 있었을까. 이라크전 파병을 둘러싸고 열병을 앓았던 한국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저자들의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책은 국제 수준에서의 민주주의보다 이라크전쟁으로 나아가기까지의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들은 9·11테러에 대한 응징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머물지 않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으로까지 뻗어간 것은 ‘테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독재체제의 변화’, 궁극적으로는 ‘민주정부로의 교체’를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통탄하는 것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폭정자들과 독재자들의 존재가 용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서방 국가들이 비서방 지역의 민주화보다 정치적 안정에만 관심이 있고, 나아가 해당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과연 정착할 수 있을지를 의심하는 회의주의가 팽배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다. 세계를 자유사회(민주사회)와 공포사회(비민주사회)로 나누는 저자들의 이분법은 그것이 ‘광장’을 보장하는가에 달려 있다. 누구든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체포, 구금, 물리적 위해에 대한 두려움 없이 발표할 수 있다면 자유사회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공포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소비에트에서 반체제 인사로서 오랜 투옥 생활을 해야 했던 샤란스키의 체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공포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악에 맞설 수 있는 내면의 용기가, 자유세계에 사는 이들에겐 악의 세력을 알아볼 수 있는 도덕적 분별력이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저자들의 의도는 쉽게 간파된다. 그것은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대한 적극적 호소와 지지다. 과연 일방주의 외교정책은 비서방세계의 민주주의를 위한 성전(聖戰)인가, 아니면 서방 세계 또는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인가.

사담 후세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 역시 정당화되기 어렵다. 아직까지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주요 동력은 국익이지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다. 국제적 수준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 책이야말로 오늘날 국제사회가 얼마나 자국의 이익에 충실한 공간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

원제는 ‘The Case for Democracy: The Power of Freedom to Overcome Tyranny and Terror’(2004년).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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