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계열사 등기이사 사임 이건희회장의 경영 포석은…

  • 입력 2005년 4월 22일 0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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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배경은 뭘까. 또 앞으로 그룹경영과 관련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회장이 20일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에버랜드 등기이사직을 내놓은 데 이어 삼성전자를 제외한 다른 7개 계열사 등기이사에서도 조만간 사임키로 함에 따라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이번 결정이 ‘주력 계열사 경영 전념’이라는 공식 이유와 함께 아들 이재용(李在鎔) 삼성전자 상무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과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그룹, ‘이사회 내실 확대’=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번 결정과 관련해 21일 “이 회장은 앞으로 주력사인 삼성전자 경영에 매달리고 나머지 계열사에 대해선 실제로 일하는 사람 중심으로 이사회를 개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외환위기 후 정부가 재계 총수들에게 그룹 계열사 등기이사로 나서라고 요구해 등기이사로 이름은 올려놓았지만 실제로 총수들이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 직접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며 “이번 결정은 이런 비정상적 구조를 정상화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회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직을 계속 유지하는 한 그룹 총수로서의 영향력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

▽후계구도 승계 정지작업 신호탄?=그룹 측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지만 이 회장의 등기이사직 사임에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정지작업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는 이 회장에 이어 이재용 상무가 시간을 두고 등기이사를 이어받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 회장의 주요 계열사 등기이사 정리 작업이 가속화되면 삼성의 후계 승계 작업은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후계자 수업’을 꾸준히 해 왔던 이 상무가 경영전면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삼성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그룹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서 정몽구(鄭夢九)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鄭義宣) 기아차 사장으로의 승계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등기이사 사임해도 총수로서 책임은 변화 없다=이 회장의 계열사 등기이사직 사임을 등기이사에 대한 법률적 부담 가중과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증권집단소송과 주주대표소송이 본격 시행되면 등기이사에 대한 책임이 갈수록 무거워질 것”이라며 “법률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법 401조 2항의 ‘업무집행 지시자의 책임’ 규정을 보면 그룹 회장은 계열회사 등기이사 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회사 경영에 영향을 끼칠 지위에 있으므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이번에 등기이사직을 내놓은 삼성에버랜드는 증권집단소송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상장회사이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를 제외한 계열사 등기이사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이 나온 뒤 개장된 21일 증시에서 삼성 계열사 주가는 등락이 엇갈렸다.

증시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주가가 꽤 많이 떨어졌지만 최근 정보기술(IT)주의 약세 등 기업실적에 기인했을 뿐 이 회장의 결정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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