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兪홍준 청장보다 문화적인 문화재委

  • 입력 2005년 4월 21일 21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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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원회는 심한 논쟁을 불렀던 ‘광화문 현판 교체’에 대해 “광화문을 원래 있던 위치에 복원하면 그때 가서 현판을 같이 교체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현판은 건물을 완공할 때 붙이는 것이므로 광화문을 원래대로 복원하면서 바꾸는 게 맞다는 것이다. 이로써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서둘렀던 박정희 전 대통령 글씨의 교체는 일단 무산됐다.

올해 광복절 이전에 현판을 교체해야 한다는 유 청장의 판단보다는 문화재위 측이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훨씬 현명하고 타당하다고 우리는 본다. 광화문은 원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올라가 있으며, 목조(木造)인 경복궁의 다른 건물과는 달리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한 점 등에서 원형과 차이가 있다. 그래서 광화문을 복원할 필요는 있지만, 지금 상태에서 ‘마땅한 글자도 찾지 못한 채’ 현판만 바꾸려는 것은 ‘왜’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유 청장이 광화문 가운데 현판 하나만 문제 삼았다면, 문화재위는 경복궁 전체의 복원과 역사성을 고려했다. 문화재위가 상식과 통념을 바탕으로 문화와 역사를 보다 큰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재위의 결정은 현판 교체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유 청장의 말을 무색하게 한다. 광화문 현판 글씨를 쓴 박 전 대통령은 현 집권세력이 적대시하는 인물이다. 문화재위의 지적대로 광화문 복원이 더 중요한 일이고 급선무인데도 유 청장은 몇 개월로 시한까지 정해 놓고 현판 교체를 고집했다. 과연 ‘정치적 판단’이 앞선 결과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의도가 정말로 없었다면 문화재청장으로서의 식견과 자질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조선 정조의 글씨를, 그것도 한 글자씩 집자(集字)해 현판을 만들겠다는 당초의 무리한 발상도 ‘개혁정권’을 내세우는 현 집권층을 의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화와 역사 분야에서의 권력정치적 판단은 가장 경계해야 할 ‘문화 파괴’ ‘역사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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