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7년 한국,세계女농구 銀획득

  • 입력 2005년 4월 21일 1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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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 스코어 40-42.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유고의 장신벽 앞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체코와 동독을 차례로 꺾은 한국팀은 전날 소련에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또다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 등번호 14번의 주장 박신자 선수는 이를 악물었다.

후반전 휘슬이 울리자 한국팀은 속공으로 유고 진영을 헤집기 시작했다. 박신자 김명자 김추자로 이어지는 공격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패스를 앞세워 상대를 공략했다. 78-71로 역전승. 한국이 세계대회에서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을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1967년 4월 22일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제5회 세계 여자농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평균 신장 168cm의 낭자군이 190cm가 넘는 장신 숲을 헤치고 얻은 쾌거였다.

176cm의 키로 골밑을 누빈 센터 박신자 선수는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2위 팀에서 MVP가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 세계가 한국의 기술농구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선수단은 맘 놓고 기뻐할 상황이 아니었다. 언론과의 국제전화에서 선수단은 “우승을 놓쳐 죄송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서울에서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유는 살벌했던 개최지 분위기 때문.

체코가 공산권 국가이다 보니 북한 관계자들이 대회기간 내내 선수단을 따라다니며 “왜 인사를 않느냐”고 시비를 걸어 왔다. 납치 위협을 느낀 선수들은 화장실도 짝을 지어 가야 했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김철환 선수단장이 강제추방을 당했다. 죄목은 기자회견장에서 한국 홍보책자를 돌렸다는 것. 한국팀은 단장이 없는 가운데 유고와의 경기를 치렀고 폐막식 참석도 생략한 채 서둘러 프라하를 떠났다. 박 선수는 서독에 도착한 직후 “상대선수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분위기가 두려웠다. 시합에 집중하기보다 어서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반년 뒤, 박 선수의 은퇴 경기 때 서울 장충체육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후 박찬숙 선수 등이 코트의 여걸로 인기를 모았지만 ‘농구 여왕’이라는 애칭은 아직도 박신자 씨의 것으로 남아 있다. 그는 1999년 미국에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이 생길 때 아시아인으로 유일하게 헌액됐다.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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