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헌법 초비상…EU중심국 佛-獨-네덜란드마저 반대여론

  • 입력 2005년 4월 2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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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랑스 파리의 주요 공공건물 외벽에는 ‘Non(반대)’이라고 적힌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유럽헌법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붙인 전단들이다.

다음 달 29일 유럽헌법 찬반투표를 앞두고 프랑스에서는 ‘반대’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반대 분위기는 네덜란드, 독일 등 주변국들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럽헌법은 25개 회원국 중 한 나라라도 비준을 거부하면 발효될 수 없기 때문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초비상이 걸렸다.

▽반대 분위기 확산=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주 TV토론을 자청해 “만약 부결되면 프랑스는 EU의 정치적 중심에서 추방당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대통령의 ‘위협’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19일 여론조사에선 ‘반대’가 55%나 나왔다.

프랑스에 이어 6월 1일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네덜란드에서도 여론조사 결과 ‘찬성’은 10%대에 불과하다. 다음 달 12일 의회 투표로 비준 여부를 결정지으려던 독일에서는 20일 한 야당 의원이 국민투표 필요성을 주장하며 의회 표결을 막을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가 본격 심리에 착수할 경우 독일 내에서의 유럽헌법 비준 절차가 잠정 중지될 수밖에 없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부는 크게 당황해 하고 있다.

▽왜 반대하나=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헌법을 읽어본 유럽인은 11% 정도에 불과하다. 헌법 내용보다 국내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과 함께 유럽 통합이 아무런 경제적 실익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는 실망감이 ‘유럽헌법 반대’라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시라크 정부가 최근 35시간 노동제를 완화하고 10%대의 높은 실업률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주요 원인이다. 동유럽과 이슬람 국가들로 EU가 확대될 경우 프랑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했다. 전통적으로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영국에서도 비준 거부는 거의 확실시된다.

▽비준에 실패하면=유럽 통합으로 가는 길은 사실상 좌절된다. 이미 경제적 통합을 상당하게 이룬 EU 회원국들은 정치적 통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유럽헌법이라는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럽헌법 비준에 실패할 경우 현재와 같은 EU 의회와 집행위원회 체제가 당분간 지속된다. 유럽헌법이 없어도 2000년 12월 EU 회원국들이 주요 정책을 합의한 니스조약이 계속 적용되기 때문에 유럽인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헌법에 명시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이 무산되고, 역내 교역자유화가 위축되면서 미국 일방주의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부상하려는 유럽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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