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역사게임 개발 ‘엔도어즈’ 김태곤 이사

  • 입력 2005년 4월 21일 1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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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역사를 접목시켜 온 '엔도어즈' 김태곤 이사가 자신이 개발한 정치 경제 롤 플레잉 게임 '군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병기 기자
게임과 역사를 접목시켜 온 '엔도어즈' 김태곤 이사가 자신이 개발한 정치 경제 롤 플레잉 게임 '군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병기 기자
《14일 오후 5시 조선군과 왜구의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다.

왜구 1만여 명이 한반도를 침략한 것.

바다에서는 천자총통 등으로 무장한 거북선이 왜구 격퇴에 나섰고, 육지에서는 치열한 공성전(攻城戰)이 벌어졌다.

전투가 끝난 뒤 논공행상이 이어진다.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 ‘군주’에서 벌어지는 가상 전투다.

‘임진록’ ‘임진록2’ ‘천년의 신화’‘임진록2+조선의 반격’ ‘거상(巨商)’ 등 역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개발해온‘엔도어즈’ 김태곤(34) 이사를 이날 만났다.》

○ 독도 그리고 광개토대왕비

개발비 20억 원 등 총 40억 원이 투입된 ‘군주’는 지난해 8월 출시된 뒤 현재까지 약 4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가입자 수는 170만 명, 동시 접속자는 3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유저(이용자)’가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정치 경제 ‘롤 플레잉 게임(Role Playing Game·RPG)이다. 상품의 생산과 부(富)의 축적, 경제력을 쌓은 이용자가 정치적으로 부상하는 등 현실의 세태가 반영돼 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 경영학과가 지난해 이 게임을 교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게임의 속성상 현실 사건에 대한 반응도 빠르다.

‘군주’는 독도와 관련된 일본의 망언이 잇따르자 3월부터 ‘독도 수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평일 두 차례, 주말 세 차례 왜구와의 전쟁에서 왜구를 20명 이상 격퇴하면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말 풍선’을 날리던 왜구들이 싸움에 지면 ‘독도는 역시 조선 땅’이라며 물러난다.

지난해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문제가 되자 광개토대왕비를 수호하는 이벤트도 하고 있다.

“독도를 주제로 게임 개발을 검토하다 포기했습니다. 독도를 게임의 배경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땅이 너무 좁아 현실감이 떨어졌습니다.”(김 이사)

○ 게임과 역사의 만남

일부 게임의 폭력성과 중독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게임과 역사의 ‘올바른 만남’이 가능할까?

이에 그는 ‘그렇다’고 단언한다. 1996년 아마추어 팀 시절에 개발한, 전투 위주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충무공전’이 출발점이 됐다. 당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지금처럼 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재조명되던 시기가 아니었다. ‘먼 외계 안드로메다에서…’로 시작하는 게 답이었다.

김 이사는 “임진왜란은 동아시아를 뒤흔든 국제적 전쟁”이라며 “이 전쟁을 계기로 명나라가 몰락하고 일본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권으로 막부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삼척동자도 아는 임진왜란이야말로 좋은 상업적 소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 2001년 ‘…조선의 반격’까지 임진왜란을 다룬 작품만 5편을 내놓았고 호평을 받았다. “임진왜란은 한민족에게 고통과 상처만 남긴 ‘패자의 전쟁’이 아닙니다. 일본의 대규모 공격을 받았지만 우리는 이겼습니다. 400여 년 전에는 이겼지만 왜 100년 전 대한제국 때에는 침략을 극복하지 못했느냐가 우리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다”

그는 게임이 청소년에게 비교육적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주’의 경우 이용자들은 투표를 통해 49일을 통치하는 군주를 선발한다. 선거운동도 있고 후보자들은 공약도 제시한다. 일단 선출된 군주는 6조(六曹)를 통해 세금을 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등 국가경영을 담당한다. 전국에 형성된 마을 80여 개는 대행수와 행수를 중심으로 자치적으로 운영된다. 심지어 남이 ‘찜한’ 아이템을 집적거리는 ‘불법사냥’이 적발되면 게임 내 형조판서에 의해 감옥에 갇힌다(‘하옥’된 이용자는 일정 시간 게임 속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는 “정치 경제 RPG의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 탄핵과 쿠데타, 사법부와 입법부의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라며 “특히 청소년들이 이 게임을 즐기면서 정치와 경제 원리를 배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딸과 함께 즐기고 싶다”

그가 게임 개발자로 나선 때는 홍익대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1992년으로 거슬러간다. 이형진(사운드) 이제형(프로그램) 정종필(디자인) 씨 등 고교 동창 3명과 개발을 시작했고 이들은 지금도 한솥밥을 먹고 있다.

게임 개발은 피를 말리는 싸움이자 젊음을 건 ‘도박’이었다. 갑자기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컸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그가 꼭 지켜온 것이 있다면 게임 출시 뒤 신체검사를 받는 일이다.

그는 “우리 역사에는 광개토대왕과 김유신, 장보고, 고려의 대몽항쟁, 임진왜란 등 게임으로 다룰 만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면서 “게임을 통해 우리 전쟁사를 다시 쓰고 싶다”고 말했다.

게임에 빠진 자녀 때문에 고민하는 가족에 대한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최선의 방법은 자녀와 부모가 유익한 게임을 골라 함께 즐기는 겁니다. 억지로 막으면 PC방이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뿐입니다. 게임을 하며 토론도 하고 게임 시간도 줄이면서 새로운 관계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세 살배기인 딸이 커서 언젠가 내가 개발한 게임을 함께 하는 게 꿈이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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