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우룡]언제까지 언론탓으로 돌릴건가

  • 입력 2005년 4월 20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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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어지럽다. 위정자들은 화려한 말솜씨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 얼굴을 붉혀도 할 말은 해야 되고, 개가 짖으면 짖도록 놔두어야 하며, 한국 국민 중에는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인사들이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도 했다. 지난 정부 때는 총리가 용미(用美)라고 해서 드러내 놓고 속내를 보이더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친미 반미로 피아를 구분하고 있다.

대통령은 터키 순방 중이던 16일 이스탄불에서 가진 동포간담회에서 “한국 국민 중에는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인사들이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고 급기야 외교통상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우리 안에는 친미파가 없다”는 공식 해명을 내놓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친미 인사’ 한 사람 없이 우리 외교가 어떻게 한미동맹을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적지 않다.

대통령의 발언이 확대 보도되자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전면에 나섰다. 대통령의 말씀이 친미 반미로 국민을 편 가르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관련해 조기숙 수석은 “과거 북한에 대한 위험을 갖고 ‘안보 장사’하던 언론이 이제 한미동맹을 흔들어 국민 불안감을 조성시켜 새로운 안보장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되받아쳤다.

그러나 이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과거에 정적을 용공분자로 몰고 학원 소요가 격화될 때마다 간첩 ‘일망타진’을 발표한 것은 군사정권이었지 언론이 아니었다.

또한 그는 “아무리 한미동맹이 중요해도 협상 과정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한미동맹에 균열이 있는 듯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론보도 때문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이상기류가 생기고 있다는 말인가.

언론은 자유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1년 국방부 기밀문서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보도 권리를 옹호하면서 “수정헌법 1조는 민주주의의 기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통치받는 자들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밀문서의 보도는 다양한 견해의 표출로서 진실에 대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 국방부 기밀문서란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한 베트남 전황에 관한 것이었다. 이 문서의 내용은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과는 정반대였다. 이는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였고 언론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코자 했다.

펜타곤과 관련된 또 하나의 보도는 같은 해 2월과 3월 두 번에 거쳐 방송된 CBS의 ‘펜타곤의 매도’였다. 미 국방부가 3000만 달러의 홍보자금을 다른 용도로 쓰려는 계획을 폭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텔레비전 저널리즘의 기념비적 보도로 평가된다.

펜타곤을 뒤흔든 보도는 언론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 보도할 권리를 주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보도하는 것이며, 이때부터 언론은 정치인과의 공생관계를 청산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부의 협력자가 아니라 비판자가 되었다.

누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가. 통치행위라면 ‘지침’도 좋고 ‘신조어’도 좋다. 그러나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최고의 뉴스가치를 갖는다. “공론은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다. 조정에 공론이 있으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공론이 항간에 떠돌아다니면 나라는 어지러워진다. 만약 공론이 아무 데도 없으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율곡 이이의 말이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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