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이 웃어야 한국경제가 웃습니다

  • 입력 2005년 4월 20일 0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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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삼성전자가 카메라 영상처리 칩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오전 9시 증시가 열리자마자 엉뚱하게 코스닥 등록 업체인 엠텍비젼과 코아로직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투신권을 시작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이 두 종목의 물량을 사정없이 쏟아냈다. 두 회사는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칩을 납품하는 기업. 삼성전자가 칩을 자체 생산하면 납품업체인 두 회사는 살아날 길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주가가 폭락한 것이다. 엠텍비젼은 하한가, 코아로직은 13.16%나 떨어졌다. 엠텍비젼은 18일 1분기(1∼3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쇼크’는 이날까지 이어져 주가는 다시 9.15% 폭락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나름대로 우량주라고 평가받는 기업조차 대기업과 관련된 작은 뉴스 하나에 기반이 흔들린다”며 “삼성전자와 KT 등 거래소 우량종목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한국 코스닥 등록 기업의 현실”이라고 푸념했다. 코스닥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우량주 테마주 가릴 것 없이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코스닥의 붕괴는 단순히 몇몇 종목의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선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벤처 활성화가 어려워진다. 또 개인투자자의 비중이 90%가량 되므로 개인의 금융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문가들이 “코스닥이 살아야 경제가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누적된 문제점=올해 초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불닭이 유행’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불닭은 ‘불타는 코스닥’의 줄임말. 그만큼 코스닥의 상승세는 눈부셨다.

그러나 활황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문제점이 2월부터 속에서 곪고 있었다.

각종 횡령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회사 자금이 부족하자 코스닥 상장법인협의회장이 협의회 돈을 횡령해 자기 회사의 사업 자금으로 쓰는 황당한 일까지 일어났다.

연예사업 등 벤처기업 본연의 일과는 상관없는 곳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회사도 속속 나타났다.

보안솔루션 업체인 데이터게이트인터내셔널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하는가 하면 문구업체인 바른손도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한 증시 전문가는 “본업을 잘하면서 다른 일을 하면 그나마 낫지만 본업도 못하면서 연예 사업에 뛰어드는 회사가 많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코스닥을 이끌어야 할 우량주들은 납품처가 대기업 한두 곳에 집중돼 있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의 카메라 칩 개발 소식에 하한가로 밀려난 엠텍비젼이 이런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우증권 신동민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납품하는 코스닥 기업들은 대기업 계열사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등과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관련주 등 근거 없는 테마주, 검은 머리 외국인(내국인이면서 외국인을 가장해 투자하는 세력)의 주가조작 의혹 등 연초부터 이어진 사건들도 가뜩이나 불안한 시장을 뒤흔들었다.

▽한국 경제의 열쇠 코스닥=전문가들은 코스닥이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코스닥은 개인 금융소득과 관련이 깊다.

2월 중순경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이 연초에 비해 13조 원가량이나 늘어난 적이 있었다. 13조 원은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290억 달러·약 30조 원)의 40%가 넘는 돈.

거래소 상장 종목은 기관과 외국인이 주로 투자하지만 코스닥은 투자자의 90%가 개인이다.

따라서 늘어난 코스닥 시가총액 중 대부분은 개인의 소득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당시 전문가들은 ‘증시 활성화→개인소득 증대→소비 증가→경기 활성화→증시 활성화’로 이어지는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의 핵심 역할을 코스닥이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최근 주가 폭락으로 ‘금융소득 증대’는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소비 회복에 대한 기대도 잦아들고 있다.

또 한 가지 코스닥에 기대되는 역할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를 높이는 일. 코스닥에 대한 신뢰는 한국 경제의 실핏줄에 해당하는 중소 벤처기업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이는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를 살리는 힘으로 작용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벤처펀드 등 각종 벤처 활성화 정책도 코스닥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액은 2000년 2조75억 원에서 2003년 6118억 원, 지난해(11월까지)에는 4978억 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동부증권 장영수 연구원은 “작전세력에 대한 철저한 감시, 횡령 등 문제 기업에 대한 과감한 퇴출 등 제도 보완이 우선 필요하다”면서 “투자자는 작전과 테마주에 흔들리지 않는 정석 투자를 해야 하고 기업들도 매출처를 다변화하는 등 실력을 키워야 코스닥 전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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