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딜레마]日여론 “고이즈미 싫지만 中시위 더 싫다”

  • 입력 2005년 4월 18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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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일(反日)시위로 중일 간의 국민 감정이 악화되면서 두 나라 정부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번 사태가 일종의 ‘외교 실패’라는 점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상당수 국민은 3주간이나 계속된 중국의 ‘일본 때리기’에 격앙돼 있다.》

▽일본 여론, ‘고이즈미 총리도 문제고 중국 시위대는 더 싫고’=마이니치신문이 16, 17일 1019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6%는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이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집권 자민당의 지지율은 25%로 한 달 전보다 8%포인트 하락해 2001년 4월 고이즈미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정(郵政) 민영화 지연 등 내정 문제가 겹치긴 했지만 인접국과의 마찰이 늘어난 데 따른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그만둬야 한다’는 응답이 44%로 지난해 12월 조사 때보다 4%포인트 늘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겉모양에만 신경 쓰는 ‘고이즈미식 외교’의 한계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일본 공관과 일본계 식당의 피해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고 반일시위도 계속되자 일본 사회에서는 ‘혐중(嫌中)’ 감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도쿄(東京) 시내에서는 우익단체들이 확성기를 튼 차량을 몰고 다니며 중국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18일 도쿄의 ‘일중우호센터’ 부속건물 1층에 있는 중국어학교에 총격이 발생해 출입문 유리에 구멍 4개가 났고 지름 5mm의 총알 2발이 수거됐다.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시위 수위 조절 고심=중국 내 시위의 주원인은 교과서 왜곡, 영유권 분쟁, 대만 문제 등에 따른 반일감정이지만 이면에는 중국 지도부가 고취해 온 애국주의 교육과 역내 패권경쟁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시위에 대처하면서 관리해야 할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구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당국이 반일시위와 관련해 ‘일본의 죄에 반대하는 것이지 일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반죄불반일·反罪不反日)’는 논리를 펴는 이유다.

일본 우익세력의 도발을 방치하면 국민의 반일 감정이 정부로 향할 수도 있는 만큼 일본의 ‘죄’를 묻는 선에서 민중의 불만이 분출되는 것을 허용하되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변질되는 사태는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18일 “중일관계는 1972년 국교 정상화 이후 가장 곤란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원인은 역사문제에 있는 만큼 일본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양국 신경전 속 외교문제 타결 모색=일본 정부는 이날 중국을 향해 강온 양면의 메시지를 보내며 중국 측의 속내를 떠보는 모습이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외무장관회담에서) 폭력에 대한 중국 측의 확실한 설명이 없었던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면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또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상은 중국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자국 국민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겨 왔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이즈미 총리는 “앞으로의 우호를 생각하면 관계를 증진시키는 전향적인 회담이어야 한다”고 말해 사과를 요구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은 17일 당국자들의 대일 강경 기류와 달리 “양국 관계 증진은 정치 지도자들의 공통된 임무”라며 사태의 조기 해결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의 면담이 거부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대신 18일 탕자위안(唐家璇) 국무위원과 베이징(北京)에서 회담을 가졌으나 일본의 피해와 보상 요구에 대해 중국이 즉답을 회피해 입장 차이만 재확인했다.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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