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紙 독자인권위 좌담]‘선풍기 아줌마’의 인권

  • 입력 2005년 4월 18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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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유의선 위원. 이종승 기자
왼쪽부터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유의선 위원. 이종승 기자
《성형수술 중독으로 2, 3배나 크고 둥근, 흉측한 얼굴을 갖게 된 ‘선풍기 아줌마’. 지난해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그의 사례는 이전의 아름다웠던 얼굴이 함께 공개돼 더욱 큰 충격을 던져주고 외모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최근에는 재수술로 얼굴 모습이 다소 나아졌다는 사실이 일부 TV 프로그램과 신문에 보도됐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일련의 보도 과정에 그의 인권도 생각해 봐야 할 대목들이 있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15일 본사 회의실에서 ‘선풍기 아줌마의 인권’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선풍기 아줌마’는 여성들의 성형수술 열풍에 비추어 일단 공익상의 보도가치가 충분한 사례로 보입니다. 그러나 거듭된 수술로 흉측해진 얼굴, 최근의 재수술로 달라진 모습 이외에 미모의 원래 얼굴 사진과 정신병력 등 일부 프라이버시 사항까지 공개되면서 인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유의선 위원=공익적 보도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성형수술의 폐해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분열증에 의한 정신적 피폐 탓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부 보도대로 본인이 직접 콩기름 파라핀 등을 얼굴에 주입하기도 했다면 어느 것 때문인지 먼저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은 취재 방법과 보도 윤리 문제입니다. ‘얼굴을 공개해도 좋다’는 본인의 동의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하지만 끔찍한 사진은 어떤 기사보다도 사실감 있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독자와 시청자는 선정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설사 법적으로는 초상권 침해 등의 문제를 비켜 갔더라도 공익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극단적 선정주의로 볼 수 있겠습니다.

▽최현희 위원=‘선풍기 아줌마’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에 놀랐습니다. 본인이 온전한 정신으로 얼굴 공개에 동의했는지, 즉 초상권과 관련해 그 동의가 진정성(眞正性)을 갖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만약 그 동의가 치료비 마련을 위한 가족의 의사일 뿐 본인은 앞뒤를 제대로 인식하고 승낙한 것이 아니라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이지은 위원=동의의 유효성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안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받아내는 과정이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취재를 하기 전에 보도의 목적과 그로 인해 초래될 수도 있는 불이익 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언론의 사명이 정확한 사실 보도에 있다고는 하지만 보도 윤리가 희박한 다수의 인터넷 영향 때문인지 종이신문들도 선정성을 닮아가는 것 같아요.

▽김일수 위원장=TV 취재진에게 초상권과 프라이버시 침해에 관해 동의했다고 해서 신문이 TV를 인용 보도하는 형식으로 전재하는 부분까지 동의했는가 하는 대목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선풍기 아줌마’가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제의를 받고 취재에 동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으리라는 심증이 갑니다. 재수술 비용의 모금에 대한 기대 등 당사자 측으로서도 다급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인격은 그런 식으로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환자의 병력은 엄정하게 보호돼야 할 개인정보인데 이를 공개한다면 인격권이나 존엄성에 대한 가치는 아예 도외시하는 거친 보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는 점에 네 분이 모두 공감하시는군요. 그런데 ‘선풍기 아줌마’와의 사이에 얼굴 사진과 사생활 공개 등에 관한 법률적 문제만 해소됐다면 언론 보도에는 더 이상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그 밖의 바람직한 보도 자세에 관해 의견을 나눠주시지요.

▽유의선=심각성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두드러집니다. ‘선풍기 아줌마’라고 검색어를 입력했더니 관련 내용이 좌르르 뜨는데 아예 공익성과는 딴판이었습니다. 특히 사진이나 제목에서는 공익적이고 분석적인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재수술 결과를 보도하는 기사에는 ‘선풍기 아줌마 성형수술, 선풍기 뗐다’는 제목이 붙어 있더군요. 인격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美) 우월주의’를 비판하는 공익적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최현희=성형수술의 폐해에 경종을 울린다는 당초의 공익적 의도와는 거리가 먼 선정적인 보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적 메시지가 없습니다. TV에서 재수술로 제거한 살점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고, 치료 도중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소를 찾아가 울고 있는 얼굴까지 보여준 것은 지나치게 선정적이었습니다. 공익성을 살리려면 한 사례에 대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유사한 사례를 더 찾아내서 부작용의 경우를 다양하게 비교, 분석했어야 합니다. 뉴스 소비자도 점점 더 자극적인 것만 찾는 관성에서 벗어나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이지은=웬만하면 눈길도 안 돌리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인터넷이 문제입니다. 신문도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성형수술의 폐해를 지적하는 어느 신문 기사 바로 옆에 세계 10대 미인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린 지면을 보고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영향력이 큰 신문들이 앞장서서 공익성을 확보하는 데 신경 써 달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김일수=최초 보도의 경우 무자격자가 시술했는지, 유수한 병원에서 정상적인 성형수술을 받았는지, 특이 체질은 아닌지, 중독 증상은 없었는지 등을 포괄적으로 점검했더라면 공익성을 띠는 바람직한 보도가 되지 않았을까요. 또 ‘선풍기 아줌마’의 이름이 ‘한모 씨’, ‘한미옥 씨(가명)’, ‘한미옥 씨’로 제각각 보도되니 도대체 실명인지 가명인지조차 헷갈립니다. ‘가명’이라고 해 놓고 성형수술 이전의 원래 얼굴 사진을 실어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한 것은 인권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소홀한지 잘 보여줍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참석자 명단▼

김일수 위원장 (金日秀·고려대 법대 교수)

유의선 위원 (柳義善·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 위원 (李枝殷·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 위원 (崔賢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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