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출생은 국가적 경사였나 봅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과 큰딸 근혜(槿惠·현 한나라당 대표) 씨가 준공 행사에 직접 참석했어요. 못 믿겠다고요. 같은 날짜 동아일보 1면에 ‘박 대통령, 서울잠실체육관 개관(開館) 테이프 끊어’란 제목으로 사진까지 실렸어요.
좌석 1만3595석, 수용 인원 2만 명의 세계적 덩치는 저의 자랑입니다. 처음부터 국제경기를 담당했죠. 같은 달 29일 12개국이 참가하는 ‘제8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가 시작됐어요.
‘한국 대 캐나다’의 개막전에 2만5000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죠. 계단에 걸터앉거나 까치발을 한 사람들을 보니 슬그머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이왕이면 좀 더 크게 지을 것이지….’
그런데 대선배인 ‘장충이 형’(장충체육관)이 흥분한 저를 보며 혀를 찼어요.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체육관에서 운동 경기만 하는 줄 아느냐.”
제가 태어나기 전 국내 최대 규모(5000석)인 장충이 형이 ‘체육관 대통령’ 만드는 일을 도맡아 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체육관 대통령이 국민에게 인기 없는 이유는 금방 알겠더군요. 숨 막히는 박빙의 승부, 극적인 역전승 같은 스포츠의 묘미가 전혀 없잖아요.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8대 대선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 중 2357명(99.9%)의 지지를 받았고,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1980년 11대 대선에서 2525표 중 2524표를 얻어 100% 가까운 득표를 했죠.
당시 전 대통령은 8월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선출됐고 닷새 뒤인 9월 1일 ‘잠실체육관’에서 취임식을 가졌어요. 그로서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싶었겠죠. 그러나 장충이 형으로부터 ‘체육관 대통령’을 물려받는 제 기분은 유쾌할 리 없죠. 1981년 3월 3일 전 대통령의 12대 대통령 취임식도 제 몫이 되더군요.
아홉 살 되던 1988년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대통령 직선제로 대통령 뽑는 장소가 체육관에서 ‘민의의 광장’으로 바뀌자 취임식장도 ‘잠실’에서 ‘여의도’(국회의사당 광장)로 달라지더군요. 그래도 저는 전혀 허전하지 않았어요. 서울 올림픽을 치르며 본연의 임무를 만끽할 수 있었거든요.
오해 없기 바랍니다. 저는 박진감 없는 ‘체육관 대통령’을 싫어할 뿐이지 모든 정치 행사와 정치인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에요. 단 스포츠의 페어플레이 정신이 없는 정치인이라면 체육관 입장을 정중히 사절하고 싶습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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