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들의 의정 1년 비망록]<4>한나라당 박형준 의원

  • 입력 2005년 4월 17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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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기자
이승헌 기자
‘내가 지금 밥 먹고 뭐하는 건가.’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시경. 국가보안법 폐지법안의 직권 상정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 단상 밑 계단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진입을 막고 있던 한나라당 박형준(朴亨埈) 의원의 뇌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당시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지도부에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려면 전근대적 대여(對與) 투쟁을 자제하자”고 건의하던 자신이 정작 그 구태의연한 몸싸움의 현장에 서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국회의원을 할 필요가 있나….”

하지만 실력 저지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던 한나라당 소속 의원으로서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면 절대로 끼어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당인으로서 ‘앞으로 유사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도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부끄럽다.”

박 의원은 지난해 말 국보법 등 4대 법안에 대한 당 지도부의 대응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당내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리더십을 문제 삼았다. 4대 법안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싸잡아 ‘악법 투쟁’으로 몰고 가는 바람에 결국 여야 간 대화의 가능성을 닫아버렸다는 것.

하지만 그 뒤로 자신이 속한 당내 소장파 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이 이른바 ‘반박(反朴)’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한나라당이 ‘친박(親朴)’과 ‘반박’으로 나뉘어 긴장 및 갈등이 증폭되는 데 대해서는 참담함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을 21세기에 걸맞은 ‘국가경영 주체세력’으로 바꿔 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이를 위해 당내 토론을 활성화하자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박 대표에 대한 투쟁 논란으로 변질돼 버렸다.”

특히 최근 자신이 중심이 돼 제기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 요구가 당 분위기 쇄신이라는 의도와는 달리 ‘박 대표 흔들기’로 비친 데 대해서는 “전략적 판단과 진정성이 부족해서 빚어진 결과”라며 한숨을 쉬었다.

박 의원은 이제 당 개혁을 위해서는 소장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내던지는 마지막 다걸기(올인)를 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일부 소장파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박 대표를 흔든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당을 실질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이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출마 포기 선언부터 해야 한다. 자기 밥그릇은 챙기면서 ‘말로만’ 개혁을 주장하면 내년 이후 한나라당은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형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박형준 의원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출신의 한나라당 초선(45세·부산 수영). 고려대 운동권 출신으로 1990년대 초반 민중당에서 활동했고, 김영삼 정부에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내 전략통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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