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지급 위해 수백조원 투자기금 현금화

  • 입력 2005년 4월 17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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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주식시장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의 3300억 원 순매도로 인해 종합주가지수가 8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로서 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연금 기금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민연금 기금에서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시점은 2035년부터. 2004년 말 현재 총자산이 141조737억 원인 국민연금은 현 제도가 유지되면 2036년 1702조 원으로 정점에 이른 뒤 11년간 그 막대한 기금이 지급되고 2047년에 고갈된다.

물론 이것은 가상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정부 개정안대로 기금고갈 시점을 2070년 이후로 연장해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2050년대 중반에 6000조 원에 육박하는 정점에 이른 뒤 2070년 이후 한 푼도 남지 않게 된다.

기획예산처의 한 관계자는 “본격적인 연금 지출이 시작되는 2035년 이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된 기금이 현금화되면서 위기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면서 “정부의 개정안은 ‘연못 속의 고래’라 불릴 정도로 연금 기금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박창균(朴倉均) KDI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지금 추세대로라면 2010년에는 국채의 4분의 3을 국민연금 기금이 갖게 된다. 또 국민연금 기금의 주식편입 비중이 20%로 높아지게 되면 2030년경 국내 모든 기업 주식의 40%를 국민연금이 소유하게 된다. 국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이 모든 기업의 주인이 되는 상황이다.

박 위원은 “국민연금 기금은 몸집이 너무 커져 가격수용자가 아니라 가격결정자가 된 상황”이라며 “연금 지급을 위해 주식과 채권을 시장에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하면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금 규모를 줄여야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해외투자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권문일 교수도 “재정안정화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보험료를 9%만 거둬도 기금이 적정 한계를 초과해 버리는데 15.9%로 높여 기금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강성모(姜盛模) 동원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선진국 금융시장은 이미 연금이 주도하고 있으며 자금 축적은 사적 연금시장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면서 “연금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커지나 민간연금이 커지나 별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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