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유홍림]진정한 정치가

  • 입력 2005년 4월 1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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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인기 있는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으로 아테네 시민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는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 아테네의 해상 제패를 주도한 테미스토클레스, 그리고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를 찬란한 문명으로 발전시킨 페리클레스를 ‘거짓 정치가’라고 힐난했다. 이들 중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웅장한 신전(神殿)을 세우고,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의 욕구를 달램으로써 큰 칭송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이들이 왜 비판의 대상이 됐을까?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들은 아테네 제국주의의 주역이다. 기실 거대한 제국도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들 정치가는 전쟁을 정치의 본질로 파악하고 시민들의 마음속에 ‘제국주의적 충동’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절제(節制)의 덕이 상실되면 풀리지 않는 갈증과 같은 이기적 욕망이 온 나라를 채운다. 이 상황에서는 정치가의 말 한마디로 전쟁이 시작되고, 한 번의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몇 안 되는 ‘진정한 정치가’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또한 아테네 시민들의 비웃음을 샀다. 소크라테스는 정치를 ‘영혼을 길들이는 기술(soul-craft)’로 보았다. 진정한 정치가는 동료 시민의 영혼에 절제와 정의감을 심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평생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神託)의 의미를 강조한 이유는 자기반성과 절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욕망의 절제야말로 평화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언동에서 비롯된 파문이 거세게 번지고 있다. 그들은 힘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시도가 반일(反日) 시위와 맞물려 상승효과를 거두면 동아시아의 평화와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분별없는 정치인의 선동이 빚어 낸 비극과 고통은 고스란히 일반 국민의 몫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절제를 심어주는 정치가는 예나 지금이나 드물다.

유홍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정치학 hongl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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