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동북아의 외톨이?

  • 입력 2005년 4월 15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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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중국 일본 러시아를 합찬 규모의 2.5배, 중국의 7배…’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자주파’와 ‘동맹파’간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던 2003년 가을. 자주파 진영의 ‘중국 경사(傾斜)’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관련 자료를 설명하던 한 고위 외교당국자는 서둘러 말을 마쳐야 했다.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 탓이었다. 이 당국자는 물론 그 뒤 ‘물’을 먹었다.

이처럼 ‘자주파=대륙세력지향’ ‘동맹파=해양세력지향’으로 갈렸던 당시 첨예했던 대립구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이다. 최근 ‘설익은’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정부당국자들은 결코 ‘한미동맹의 이탈’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 깔린 논리가 해양세력의존 일변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외교는 ‘말’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몸이 이미 왼쪽에 기울어 있는 데 아무리 나는 오른쪽이라고 얘기해봐야 강변(强辯)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가 애써 다가가려는 중국의 인식이 우리의 ‘기대치’와 거리가 있는 듯 하다는 점이다.

국방차관보를 지낸 애시턴 카터 미국 하바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9.11 테러를 예언한 자신의 책 ‘예방적 방어(Preventive Defense)’에서 중국은 21세기 미국의 ‘잠재적 적국(敵國)’이라고 지적했다. 미일 동맹강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국력을 이룰 때까지 도광양회(韜光養晦·빚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1999년5월 유고주재 중국대사관이 미군기의 오폭으로 부서지고 직원 2명이 사망했을 때나 2001년4월 하이난섬 부근에서 미군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조종사가 숨졌을 때 중국정부는 소리만 질렀을 뿐 이내 상황을 수습했다. 2002년1월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의 전용기에서 도청장치가 20여개나 발견됐을 때도 항의만 했을 뿐 입을 다물었다.

과거사 문제를 놓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듯한 일본과의 관계만 해도 속기류는 다소 다르다. 한 외교당국자는 ”최근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일본의 유엔안보리 진입에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한 일이 없다“며 ”그것이 대세라고 생각되면 찬성으로 돌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요는 중국이 철저히 자신의 전략아래 움직이고 있을 뿐 이라는 얘기다.

현 정부 초기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제기되자 중국 쪽에서 전해져온 불쾌하다는 반응이나 작년 고구려사 왜곡사태 와중에서 중국이 보여주었던 거친 태도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에 꽤 오래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중국 정부 고위관리들이 친해지면 술자리에서 ‘과거에는 왕을 우리에게 책봉받지 않았느냐’고 말하더라”며 “더욱이 ‘그나마 당신들이 대접받는 것은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고 말했다.

좀 더 외교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요즘 새록새록 든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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