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

  • 입력 2005년 4월 15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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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중국 양쯔 강을 오가는 정크선의 견부들. 물살이 거센 곳을 지날 때 이들은 배에서 내려 강가의 바위 등을 기어오르며 배를 밧줄로 이끈다. 사진 제공 효형출판
100여 년 전 중국 양쯔 강을 오가는 정크선의 견부들. 물살이 거센 곳을 지날 때 이들은 배에서 내려 강가의 바위 등을 기어오르며 배를 밧줄로 이끈다. 사진 제공 효형출판
◇양자강을 가로질러 중국을 보다/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김태성 박종숙 옮김/648쪽·2만2000원·효형출판

이 책을 읽다 보면, 무엇보다 저자의 열정이 감탄을 자아낸다.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6개월간 6300km에 이르는 양쯔(揚子) 강의 광대한 유역을 둘러봤다. 그것도 교통이나 여행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100여 년 전에. 게다가 중국인들의 생활과 풍경에 대한 촘촘하고도 방대한 기록은 요즘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4년간 한국과 일본 등을 여행한 뒤 1897년에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을 냈다. 그리고 1년 뒤 양쯔 강을 여행했고 1899년 이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100여 년 전 세계 열강들의 중국 진출, 중국인들의 풍속과 생활, 문호 개방으로 기지개를 켜는 중국 곳곳의 실태 등을 기록한 인문 지리서다.

그의 여정은 상하이(上海)에서 출발해 항저우(杭州), 한커우(漢口), 사스(沙市), 이창(宜昌), 완셴(萬縣) 등을 거쳐 쓰촨(四川) 성 내륙까지 이른다.

열강들의 조계지로 나눠진 상하이는 인구 20만 명의 도시로 성장해 국제 수준의 법률과 위생 규정이 적용됐다. ‘모범 조계지’로 불린 이곳은 당시 동아시아에서 제일가는 환락의 메트로폴리스였다.

그러나 중국인과 외국인들은 서로 삐걱댔다. 중국인은 외국인을 양귀(洋鬼) 또는 양구(洋狗)라고 조롱했으며 외국인은 중국인을 혐오했다. 영국인인 저자는 여행 내내 중국인들의 조롱을 경계해야 했다.

저자는 수상교통을 소개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그중 특이한 것은 정크선의 견부들. 이들은 양쯔 강 상류의 물살이 거센 협곡 지역을 지날 때 배에서 내려 아슬아슬한 절벽이나 암벽에 매달린 채 밧줄로 배를 이끈다. 배와 함께 물에 휩쓸리거나, 밧줄이 엉키는 바람에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저자는 이런 견부들을 보고 급류의 역경을 극복하는 중국인의 활력을 칭찬하고 싶다고 썼다.

그러나 저자는 완셴에서 만난 무관의 허풍에 혀를 내두르며 “세련된 문화와 2000년이 넘은 문명이 있음에도 (중국) 지식인들의 무지를 참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무관은 중국 장군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자 대만 해협에 소용돌이가 생겨 러시아 영국 일본의 해군이 이에 휘말려 전멸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또 완셴에서 바오닝푸(保寧府)까지 내륙을 여행하면서 목도한 아편 중독의 실태를 개탄했다. 쓰촨 성의 대도시에서는 남자의 80%, 여자의 40%가 아편 흡연자였다. 쓰촨에서 저자를 호위했던 인원 143명 중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아편 흡연자였다.

저자는 중국인들이 아편쟁이가 된 이유는 쾌락을 추구하거나 무직(無職)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중국인은 “아편의 적절한 사용이 거래를 촉진하고 용기가 없어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당시 “열강들의 먹잇감이 된 중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민중은 꼿꼿한데 관료가 부패할 뿐”이라고 기록했다. 그는 특히 서양문물이 ‘중국의 각성’을 일깨워 느리긴 하지만 중국을 자만과 은둔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후 중국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저자가 내린 진단은 21세기 중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한 설명이 될 듯하다. 원제 ‘The Yangtze Valley And Beyond’(1899년).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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