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버림받은 자의 슬픔

  • 입력 2005년 4월 15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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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공지영 씨는 7년 만에 전작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선보이며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거나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소설가 공지영 씨는 7년 만에 전작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선보이며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거나 정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지음/316쪽·9500원·푸른숲

“상대를 괴물처럼 대하면 자기도 괴물이 된다는 범죄심리학 이론이 있어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라도 본래 품성은 따뜻하다고 믿습니다. 이번 작품을 쓰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커졌어요.”

소설가 공지영(41) 씨가 ‘봉순이 언니’ 이후 7년 만에 전작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선보였다. 이 책은 세상에게 버림받아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외환위기가 터진 후 연말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적막한 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전국 교도소에서 사형수 23명이 처형됐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가슴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면서 인간이 인간에게 죽음을 내린다는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고등어’ ‘봉순이 언니’ 등 이념의 시대인 1980년대나 억눌린 여성을 이야기하던 공 씨가 사형 제도를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된 동기다.

특히 공 씨는 “사회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1980년대에 많은 이들이 구치소를 오갔지만 정작 생활이 어려워 도둑질 같은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빈약했다”며 “이젠 소외된 이웃의 존재와 범죄가 사회 구조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을 떠돌다가 3명의 여자를 살해한 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스물일곱 살의 정윤수와, 어린 시절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이를 묵과한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사는 서른 살의 대학 교수 문유정이라는 두 사람을 축으로 전개된다.

유정은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봉사 활동을 하는 고모 모니카 수녀를 통해 윤수를 만난다. 두 사람은 생의 절망을 체험한 자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아본 자로 서로의 모습이 닮았음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고 진심으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면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에 눈을 뜬다.

사형수가 죽음을 앞두고 참회한다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지만 이 소설에서는 리얼하게 다가온다. 공 씨는 그 이유를 꼼꼼한 ‘취재’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교도소를 오가며 사형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법학, 사회학, 범죄학 서적을 통해 사형 제도에 관한 여러 자료를 읽고 판·검사, 교도관, 종교 교화원을 두루 만나 취재했지요. 머리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을 접하게 되면서 살아있는 언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소설에서 윤수가 자기 이야기를 쓴 ‘블루노트’와 작품의 줄거리를 병치해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이 형식을 통해 저자는 윤수 형제의 처절했던 지난날과 왜 윤수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공 씨는 “옷을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해라는 이야기처럼 서로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것은 사랑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 씨는 5월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을 쓸 예정이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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