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들의 의정 1년 비망록]<2>열린우리당 우상호의원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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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기자
김동주 기자
“이게 뭐냐. 내가 이 짓 하려고 국회에 들어왔나.”

3월 2일 국회 본회의장 중앙통로. 열린우리당 우상호(禹相虎) 의원은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의원과 몸싸움을 벌이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이런 참담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 의원은 행정도시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단상으로 뛰어가던 이 의원의 허리춤을 붙들다가 두 사람 모두 바닥에 넘어지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한 것.

총선 유세 때 ‘싸우는 구태를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던 우 의원은 지역 주민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우 의원은 이 의원을 끌어안은 손을 한동안 풀지 못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당 지도부의 시선도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이상’이 ‘현실’에 꺾이는 뼈아픈 경험에 마음이 저렸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택시용 액화석유가스(LPG)의 특별소비세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 대한 제안 설명 및 토론이 시작됐다. 이 의원은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월평균 77만 원의 저소득에 시달리는 택시 운전사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찬성 표결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2400억 원의 세수가 줄고, 다른 업종에까지 면세 요구가 확산될 경우 세수 경감이 2조 원대에 달할 것이므로 법안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제 관료 출신 의원들도 법안 통과에 강하게 반대했다.

“택시 운전사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당 의원으로서 정부와 반대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우 의원은 결국 ‘마음’을 따르지 못하고 ‘반대’를 선택했다. 이 법안은 찬성이 반대보다 많았지만, 재석 과반이 안 돼 결국 부결됐다.

우 의원은 본회의장을 나와 담배를 피웠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면서 저소득층의 비참한 생활상을 마음에 새겼다. 의원이 되면 그들을 돕겠다고 다짐했으나 현실엔 걸림돌이 많았던 것이다.

그는 또 국회 회기 마지막 본회의가 열릴 때마다 법안 20∼30개에 대해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채 찬반 표결을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법안 수가 워낙 많다보니 소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이나 당론으로 결정된 법안이 아닐 경우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사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고백.

“부끄럽습니다. 혹시 제가 표결을 잘못 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까봐 두렵습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우상호 의원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열린우리당 17대 초선의원(43·서울 서대문갑). 1998년 고건 서울시장선거대책본부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총선에선 낙선했다. 재학 때 윤동주 문학상(시 부문)을 수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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