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강홍빈]걷고 싶은 도시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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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따사로운 4월, 세종로 사거리가 유난히 생기발랄해 보인다. 동서 방향으로도 횡단보도가 새로 생겨 지하도로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던 시민들이 햇빛 아래로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즐거운 변화는 더 있다. 무교동 길, 종로구청 길의 보도가 시원스레 넓어졌고 차도속의 섬으로 고립됐던 남대문을 보도로 잇고 기존의 보도를 넓히는 공사도 한창이다. 남산의 남쪽 순환도로도 북쪽 순환도로처럼 자동차 없는 산책로로 재탄생하리라는 소식이고, 북악스카이웨이에도 새로 산책로가 생긴다 한다. 새봄에 어울리는 모처럼의 즐거운 소식이다.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려는 당국, 전문가, 시민단체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실, 걷는 것은 사람에게 숨쉬는 것만큼이나 기본적인 행위다. 너무나 기본적인 행위여서 걷는 즐거움, 집 가까이 걷기 좋은 길이 있는 동네에 사는 행복은 긴 병에서 회복돼 오랜만에 걸을 수 있게 된 사람 아니면 쉽게 느끼지 못한다. 깨끗한 공기와 물이 그러하듯, 걷기 편한 길, 걷기 즐거운 길은 좋은 도시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다.

▼걷기가 ‘특별한 운동’이어서야▼

‘재건체조’로 아침을 시작하던 개발시대, 가난한 연인들은 자동차가 뜸한 거리를 마냥 걷는 ‘재건 데이트’에 만족해야 했다. 물론 ‘걷고 싶은 도시’라는 구호도, 비만증도 낯설었던 시대다.

그러나 이들의 자녀가 젊은이로 자란 지금, 걷는 일은 시간을 내어 산이나 공원이나 러닝머신 위에서 해야 하는 ‘특별한 운동’이 돼 버렸다. 땅 밑을 오르락내리락해야 건널 수 있는 사거리, 좁고 끊기기가 다반사며 노상주차, 노점상에 잠식당하고 오토바이가 곡예 주행하는 인도, 거기에다 혼탁한 공기와 어지러운 거리 풍경이 도시를 걷고 싶기는커녕 걷기 무섭고 어려운 장소로 만든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운동이 시민사회에서 자라나고 서울시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많은 사업을 펼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걷고 싶은 도시’-. 표현은 소박하지만 그 함의는 깊고 넓다. 구현하려면 대형 건설사업보다도 훨씬 더 정성과 공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러나 나는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경쟁력을 키우는, 이 시대의 중심과제라고 굳게 믿는다.

‘걷고 싶은 도시’는 ‘걷기 편한 길’에서 비롯된다. 교통사고의 위협 없이 자유롭게 도시를 걸을 권리는 모두에게 보장돼야 할 기본 권리다. 특히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 ‘보행약자’의 보행권은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율은 세계 정상급이고 어린이의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세종로 태평로 같은 서울의 간판 길뿐 아니라 동네의 생활도로, 특히 학교 부근의 길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놓는 환경에서 삶의 질은 높아진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는 걷기 편할 뿐 아니라 걷는 것이 즐거운 도시를 지향한다. 잘 정비된 보도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맑은 공기, 푸른 나무, 품격 있는 가로시설물, 매력 있는 거리 풍경, 풍부한 도시의 역사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도시는 걷고 싶은 곳이 된다.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는 그래서 인간의 도시, 환경도시, 문화도시를 만드는 일과 하나다.

또한 그런 가치를 존중하는 성숙된 도시사회를 만드는 일과도 통한다. 도시경쟁력은 결국 도시환경의 매력도와 도시사회의 수준의 합에 비례한다.

▼도시경쟁력은 어디서 생기나▼

개발시대의 유산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기본을 착실하게 다지기보다 화끈하게 한판 벌이기를 좋아한다. 국가와 지방 모두 행정도시, 혁신도시, 뉴타운 등 거대 프로젝트와 이벤트성 사업에 명운을 걸고, 납세자들 또한 불구경하다 자기 집 타는 것도 모르고 그 장단에 춤을 춘다. 걱정스러운 것은 구름 좇다가 정작 미래를 위해 긴요한 일을 할 시간과 기회를 잃는 것이다. 물방울이 돌을 깎는다. 가깝고 작은 것들을 고쳐가는 노력, 차분하나 진지한 노력이 모여 큰 변화를 일구어낸다.

나는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려는 서울시의 노력에서 그러한 싹을 발견한다.

강홍빈 객원논설위원·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계획학 hbkang@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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