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래와 도전]<10·끝>미국과 EU의 아시아전략

  • 입력 2005년 4월 14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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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음식을 남기지 말라. 중국과 인도의 어린이는 굶고 있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한 세대가 흘렀다.

나는 내 딸에게 ‘수학 숙제 꼭 끝내라. 중국과 인도의 네 또래가 장래의 네 직장을 넘보고 있단다’라고 가르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 씨가 이달 초 펴낸 저서 ‘지구는 둥글지 않다(The world is flat)’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권의 경제발전을 경계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미국인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의 아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든지 하는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과 맞서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중국만의 체제’와 아시아의 미래

미국의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03년부터 1년 동안 전 세계 10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마라톤 연구를 통해 2020년의 지구촌을 전망했다. 그 결과가 지난해 12월 나온 보고서 ‘미래를 그린다(Mapping the Global Future)’에 담겨 있다.

보고서는 상당 부분을 중국의 미래에 할애했다.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 서구식 교육을 받은 5세대 지도자가 2010년대 중반에 본격 부상해 세대교체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중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중국만의 독특한 정치제도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국만의 체제’가 주변 동남아국가들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미국기업연구소(AEI) 닉 애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15년 뒤 중국의 지향점,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정치적 선택, 미국의 대응전략이 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란 기류가 토론을 지배했다”고 말했다.

● 미국 ‘Russia Down, China Out’

미국은 일차적으로 중국을 견제대상으로 규정했다. 견제수단은 에너지. 미국 제임스타운 재단의 장웬란 연구원은 “미국은 원유의 육상수송루트(중앙아시아) 및 해상수송루트(중동∼말라카해협∼남중국해)를 향후 수십 년 동안 장악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도 이를 읽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에 군사기지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도 에너지 확보 및 중국의 에너지루트 관리를 위해서다. 한국 외교안보연구원 김성한(金聖翰) 교수는 미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을 ‘러시아의 기득권을 줄이고(Russia Down), 중국의 지역영향력을 차단하며(China Out), 미국은 개입한다(America In)’로 정리했다.

중국은 이에 대응해 2020년까지 100만 kW급 핵발전소 27개를 짓는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석탄과 석유에 의존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미국의 지배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중국의 현재 원자력발전의 에너지 분담률은 1.7%에 불과하다.

● 미국의 제2관심사는 ‘통일한국’

중국의 민족주의는 2020년 동북아 안보지형의 주요 변수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다만, 중국 경제의 고성장이 멈출 경우 국내의 정치적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민족주의를 활용할 개연성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정치체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NIC의 전망처럼 중국식 정치체제가 갈수록 커질 중국의 경제 문화적 영향력을 배경으로 주변국에 확산되는 경우를 가장 경계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다면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통일한국. 애버스타트 선임연구원은 “일부 토론참석자가 통일한국이 핵을 갖는 상황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NIC 보고서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주한미군의 존재 근거가 없어지면서 통일한국이 미일 동맹체제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 뒤늦게 아시아에 눈 돌리는 유럽연합

미국에 비해 뒤늦게 아시아에 주목하기 시작한 EU의 2020년 대아시아 전략은 주로 경제적인 목적에서 접근하고 있다. 즉,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거대 시장과 원활한 관계를 수립하고 동남아의 저개발 국가를 새로운 시장으로 키워낸다는 것. EU의 최신 ‘아시아 전략 보고서’는 권역별로 주요 공략국가를 정하고 있다.

우선 동북아시아의 경우 중국과의 긴밀한 우호관계가 절대적이라고 명시했다. 경제적인 이익뿐 아니라 미국의 일방주의를 공동으로 견제하는 파트너 관계를 의식한 것이다.

남아시아에선 역시 인구대국인 인도를 타깃 국가로 삼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빈곤 퇴치에 적극 기여함으로써 이들 국가가 세계무대에서 EU를 지지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타깃으로 삼은 국가는 인도네시아다.

EU 집행위는 최근 “외교 무대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현안을 유엔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하겠다는 EU의 기본방침을 위해서라도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나의 아시아’ 전문가 전망▼

유럽의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미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아시아가 미국 및 유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파스칼 보니파스=프랑스의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장은 지정학적인 문제를 들었다. 그는 “아시아가 경제 분야에서만큼 외교 무대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남북한 대치, 중국과 대만의 긴장 등 역내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가 여전하고 한국 일본 대만 등 ‘역내 선진국’들조차 미국에 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것.

그는 또 “아시아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화해의 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의견을 모아 공동의 힘을 발휘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유럽이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가 단합해 새로운 축을 이루기보다 중국이 독자적으로 서방세계와 맞서는 구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자크 그라브로=프랑스 최고 상경계열 대학인 HEC의 유라시아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현재 일본의 3분의 1 수준인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2025년경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크 그라브로 소장은 “중국이 워낙 돋보여서 그렇지 인도와 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의 성장세도 만만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新)사업에 도전하는 모험심, 협업 효과를 극대화하는 공동체의식,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등을 성장 동력으로 꼽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경제 통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는 원화 위안화 엔화가 유로화처럼 통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경제주권의 상당 부분을 EU에 이양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그럴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유럽의 경제통합은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목적에서 시작됐다”며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됐는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특별취재팀▼

▽국제부=김창혁 차장

이호갑 기자

금동근 파리특파원

김승련 워싱턴특파원

▽경제부=권순활 차장

공종식 기자

차지완 기자

▽사회부=유재동 기자

▽교육생활부=길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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