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개인천문대 가평 ‘자연과 별’ 지은 김상종씨

  • 입력 2005년 4월 14일 15시 42분


코멘트
《경기 가평군 북면 백둔리에 있는 개인 천문대 ‘자연과 별’의 김상종(46) 씨.

그는 별이 잘 보이는 명지산 중턱 해발 500m 정도 되는 곳에

천문대와 통나무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의 일은 별 보는 것. 하지만 정작 자신은 ‘별 볼 일 없는 남자’라고 말한다.

그의 24시를 담았다.》

○ 별 보는 남자

7일 오후 11시경. 남서쪽 지평선 쪽에 유난히 밝게 보이는 별이 있다.

“아! 시리우스다.”

별을 제대로 본 적 없는 도시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이곳에서는 도시인들을 위한 별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별이다. 하지만 김 씨는 계속 “운이 없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데…”라고 했다. 이날 오후까지 비가 오락가락했고 구름도 많이 끼었기 때문이다.

그의 집 옆에는 지름 5m가량의 돔이 있는 천문대가 있다. 직경 40cm의 천체 망원경 등 16개의 다양한 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개인 천문대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준급 시설이다.

8일 오전 1시경. ‘별 아저씨’의 설명대로 신기하게도 하늘의 마술이 펼쳐졌다. 대형 망원경을 들여다보자 토성과 주변의 둥그런 테가 보였다.

목성도 관측됐다. 목성의 줄무늬, 그리고 하나 둘 셋 넷…. 왼쪽으로 콩알 같은 위성들이 나타났다.

별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천문대 한쪽에는 그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최초로 만든 망원경이 있다. 난로 연통으로 만든 몸통과 보통 유리를 다듬어서 만든 소박한 망원경이다.

“별은 꿈이죠. 이 망원경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배율이 3배쯤 될 겁니다. 벽돌 하나가 석 장 크기로 보였으니 그 배율이죠.(웃음)”

○ 집 짓는 남자

그는 오전 4, 5시까지 끝없이 하늘을 쳐다본다. 별을 보다 지치면 잠이 든다.

하지만 별만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이 없으면 오전 10시 전후 늦은 아침을 먹고 집 근처를 산책한다. 이날 오전에는 길에서 만난 딱새 암컷과 눈을 맞췄다. 아무리 봐도 알 수 없지만 그는 색깔을 볼 때 암컷이란다.

그는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똑똑하다”며 “거무튀튀한 땅은 무표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 속을 파보면 다양한 풀과 나무의 생명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말이 산책이지 그의 신경은 온통 덫에 걸린 고라니, 노루 같은 야생동물이 있는지에 쏠려 있다.

오후 2시. 신고 벗기 좋다며 애용하는 ‘할머니용’ 털신에 맨발을 집어넣었다. 집 지으러 가는 길이다. 요즘 그는 천문대 뒤편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있다.

그는 1998년 이곳에 정착한 뒤 텐트를 치고 높이 10m에 20평이 넘는 두 채의 통나무집을 만들었다. 새가 나뭇가지를 하나씩 날라 둥지를 짓는 것처럼 혼자 지은 집이다. 암벽 등반이 특기였던 그는 나무를 들고 올라가 손수 못을 박았다.

“유럽에서는 집을 스스로 짓는 일이 많습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정성을 들이면 자신의 집을 손수 만들 수 있습니다.”

○ ‘별난’ 남자

'별 아저씨' 김상종씨(왼쪽)와 부인 이영이씨. 천체 망원경을 보고 있는 이는 별자리 교육을 담당하는 김종호(25)씨로 지난해 '별난 가족'의 일원이 됐다. 강병기 기자

공대를 중퇴한 그는 별과 등산, 사진에 푹 빠져 있었다. 한때 주방용품 수입 판매와 제과점 경영으로 돈을 모았지만 도시 생활은 그의 마음속 빈 곳을 채워주지 못했다.

95년 그와 부인 이영이(39) 씨가 결혼을 앞두고 약속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이 씨는 김 씨에게 위험한 산악 등반을 포기하라고 요구했고, 김 씨는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다.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며 무당벌레를 종이 위에 올린 이 씨는 “신혼 3년간 서울에서 살았지만 남편은 천성적으로 도시와 어울리지 않았다”며 “산에 있어야 마음껏 숨을 쉬고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 부부는 저축한 1억3000만 원으로 가평에 2600평의 땅을 산 뒤 자연에 의지하는 삶을 시작했다. 남편은 처음에는 스튜디오를 차려 사진을 찍는다고 했지만 별이 잘 보이는 곳에 정착하자 곧 별에 ‘미쳐’ 버렸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한 달 50만 원의 생활비로 버티기도 했다.

○ 행복한 남자

오후 6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들 부부에게 과연 행복한지, 갇혀 사는 듯한 답답함은 없는지를 물었다.

아내가 “양(量)보다는 이곳의 질(質)적인 삶이 즐겁다”고 말하자 남편은 “무슨 알 수 없는 소리냐. 그냥 개념 없이 사는 것”이라며 웃는다.

요즘 부부는 가끔 다툰다. 주변이 점점 개발되고 있는 이곳을 떠나 히말라야의 해발 3000∼4000m 계곡에서 살겠다는 남편의 계획 때문이다.

이 씨는 “말은 그렇게 해도 가지 못할 것”이라며 “(남편이) 마음이 약하고 주변의 짐승들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후 8시 해가 떨어지면서 날씨가 쌀쌀해졌다. 이곳의 시간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감지된다.

“도시에서는 여성의 민소매 차림을 보며 여름이 왔다고 느끼죠(웃음).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시각각 주인공이 달라지는 풀과 나무, 동물의 상태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압니다.”(김상종 씨)

‘자연과 별’ 예약은 숙박의 경우 30인 이상만 받으며 1인당 3만∼5만 원. 별 관측만 할 경우 1인당 1만5000원이다. ‘자연과 별’ 인터넷 주소는 star21@naturestar.co.kr, 031-581-4001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